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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곁에 서라"…재판장의 가슴뭉클한 훈계

입력 : 2009-02-18 17:09:00 수정 : 2015-08-13 15: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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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성전환자) 성폭행범에 대해 부산지법이 국내 사법사상 처음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 가운데 재판장이 20대 후반의 피고인에게 판결문 외 별도의 훈계문을 낭독해 법정을 숙연케 했다. 일부 방청객들은 재판장의 폐부를 찌르는 훈계에 감동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 재판장을 맡고 있는 고종주 부장판사는 훈계문에서 “신모(28) 피고인은 타인의 주거에 침입해 돈을 훔치고 흉기로 위협해 자신의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한 피해자를 강간했고 강간의 방법도 대단히 좋지 않았다. 피고인이 초범이고 피해자와 합의하였다고는 하지만 법정형이 무거울 뿐만 아니라 죄질이 극히 불량해 엄중한 형으로 다스려야 할 필요가 있는 사건입니다”라고 서두를 뗐다.

고 재판장은 “그러나 자신은 피고인에 의한 범행으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젊은이의 앞날을 생각해 부디 선처하여 달라’는 피해자의 법정 진술이 있었다”며 “피해자는 강간당한 것보다 흉기로 자신의 생명을 위협당한 것이 더 무서웠고 고통스러웠다고 거듭 호소하면서도 피고인에 대한 관용을 구하였다”고 밝혔다.

고 재판장은 “이와 같이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악행을 한 다른 사람들에게 더 관대한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이는 일종의 신비입니다. 아마 그들이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 사회는 피해자와 같은 성적 소수자는 물론 많은 분야에 소수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있으며 여러 형태의 장애로, 질병으로, 가난으로, 고아로, 참으로 고달프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결코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거나 남을 괴롭히면서 살지 않습니다. 그저 견뎌낼 뿐입니다”라고 말을 이어갔다.

그는 특히 “신 피고인은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을 운명적으로 조우하였고, 피고인은 아무런 잘못을 행한 바 없는 그에게 실로 이해할 수 없는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좋은 부모와 건강한 신체를 가진 피고인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진심으로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힘들지만 괜찮다면서 젊은이의 앞길을 막지 말라는 취지의 언명을 하였습니다”라고 담담히 말을 이어가다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뜸을 들인 고 재판장은 목소리 톤을 조금 높여 “피고인은 2009년 2월 18일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이 날을 기점으로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피고인은 주변을 둘러보기 바랍니다. 어려운 사람들이 자주 보일 것입니다. 다가가서 무슨 일이든 좋은 일을 행하세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세요. 소수자의 곁에 서세요. 그러라고 신은 피고인에게 좋은 신체와 건강한 정신을 주신 것입니다”라며 “이 말이 그냥 허공을 치지 아니하고 피고인의 가슴에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피고인이 지금 들은 대로 그렇게 마음을 먹고 행동하기 시작하면, 바로 그 지점에서 세상은 조금씩 변화할 것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고 재판장은 그러나 피고인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재판장은 신 피고를 응시하며 “법이 언제나 온정적이지는 않습니다. 재범의 경우 더 이상의 관용은 없을 것입니다. 피고인은 초범에 너무나 큰 잘못을 행하였지만, 그 잘못을 능히 덮을 만한 더 큰 선행을 하여야 합니다. 뉘우치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성전환자인 피해자의 간청을 받아들여 중한 범행을 한 피고인을 이와 같이 선처하는 것입니다. 피고인에게 상당한 정도의 부담으로 작용할 집행유예 기간중에 법원이 피고인에게 가지고 있는 일말의 의심과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기 바랍니다. 그럴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라며 장문의 훈시를 마무리한 뒤 훈계문을 조용히 접어 피고인에게 전달했다. 

부산=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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