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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폭행으로 처리…얼빠진 경찰

관련이슈 아동대상 범죄 급증

입력 : 2008-04-03 14:33:52 수정 : 2008-04-03 14: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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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지문 찾고도 이틀 지나서야 감식 의뢰
"석달전 300m 거리서 판박이 사건 있었는데…"
◇김도식 경기경찰청장이 31일 일산 초등생 납치미수 사건과 관련한 긴급기자회견에서 “경찰의 안일한 대처에 대해 깊이 사과드리고 범인을 조기 검거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경기 일산 초등생 납치미수 사건의 용의자가 31일 검거됐지만 이번 사건은 초동수사부터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고 무성의하게 대응한 총체적 부실수사의 전형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3개월여 전에도 불과 300m 떨어진 같은 대화동의 인근 아파트에서 거의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으나 역시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31일 일산경찰서 수사본부 등에 따르면 이번 사건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은 CC(폐쇄회로) TV로 분명히 납치 의도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단순폭력으로 상부에 보고했다.

더구나 보고 중 일부는 허위로 드러났으며 목격자를 상대로 조사도 벌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산경찰서 대화지구대는 지난 26일 오후 3시59분쯤 여자 어린이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남성에게 맞았다는 신고를 받고 대화동의 한 아파트에 출동했고 CC TV를 확인했다.

CC TV에는 엘리베이터 밖으로 끌려나가지 않기 위해 저항하는 초등생 강모(10)양을 마구 때리는 용의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 출동한 지구대원들은 용의자가 흉기를 미리 준비해 범행 의도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단순히 취객이 어린이를 때린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이 이처럼 안일하게 대처하는 바람에 사건 당일 엘리베이터 안에서 용의자 것으로 보이는 지문 1점을 확보하고도 이틀 뒤인 28일 감식을 의뢰해 범인을 조기에 검거할 기회를 놓쳤다.

결국 이 사건은 야간 당직자에게 인계돼 발생 다음날인 27일 오전에야 단순 폭력사건으로 일산경찰서로 넘겨졌지만 용의자가 흉기를 갖고 있었다는 부분은 제외됐다.

경찰은 또 오후 5시6분에야 현장에 도착했으면서도 오후 4시25분에 지문감식을 했다고 상부에 허위보고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당일 탐문 수사과정에서 김모씨를 조사했다고 발표했지만 취재 결과 조사를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부실 수사는 경찰서에서도 이어졌다. 27일 접수된 사건은 29일 수사가 개시됐지만 경찰관 1명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가서 CC TV를 확보한 게 고작이다. 경찰은 피해 어린이의 어머니는 물론 위기에서 구해준 여대생 장모씨나 사건 현장 아파트 3층에 사는 주민 등 목격자 진술도 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경찰의 부실 수사를 보다 못한 강양의 부모가 직접 피해 내용이 적힌 전단지를 만들어 아파트 주변에 배포했을 정도다.

심각한 문제는 지난해 12월22일 고양시 대화동의 다른 아파트에서도 초등학생 A양이 승강기에서 한 남성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당일 이 아파트 CC TV에는 A양이 승강기에 타자 이 남성이 곧바로 따라 올라탄 뒤 몇분 뒤에 계단을 뛰어내려와 황급히 달아나는 모습이 촬영됐다.

A양은 승강기 안에서 피를 흘린 채 발견됐고 A양의 부모는 112에 신고해 관할인 대화지구대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해 현장을 조사했다. A양의 아파트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강양의 아파트와는 직선거리로 불과 300m다.

A양의 어머니는 당시 범인이 주먹으로 딸을 네다섯차례 때렸으며 승강기 거울 파편이 얼굴에 박혀 있었다고 경찰에 밝혔고, 당시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도 A양의 얼굴과 옷에 피가 묻어 있었고 머리 밑에 세 군데 찢어지는 피해를 당한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그러나 사건 발생 석달이 지나도록 CC TV를 확보하거나 탐문수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부실수사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이날 긴급 화상회의에서 “이번 사건은 명백한 경찰의 잘못으로 국민에게 실망을 끼쳐 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반성한다”고 밝혔다. 김도식 경기경찰청장도 “경찰의 안일한 대처에 대해 깊이 사과드리고 범인을 조기 검거하겠다”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경찰청은 부실 수사와 관련, 박종식 일산서 형사과장과 이충신 대화지구대장 등 경찰관 6명을 직위해제하고 경기경찰청장과 일산서장을 서면경고했다. 경찰은 강양을 위기에서 구해준 대학생 장씨에게는 ‘용감한 시민상’을 수여키로 했다.

고양=송성갑·유태영 기자

 ■ 경기도 일산 초등생 납치미수 사건 일지
3, 26일
오후 3시44분
고양시 대화동 모 아파트 엘리베이터서 40∼50 대 남자 강모(10) 양 폭행하고 납치하려다 도주
오후 3시59분 아파트 관리사무소 일산경찰서 대화지구대에 신고
오후 4시3분 경찰관 2명 현장 도착, CCTV 확인
오후 5시 경찰 엘리베이터서 지문 1점 채취
27일 오전 11시 일산서 형사지원팀에 사건 접수
28일 시간 미상 경찰청에 지문 감식 의뢰
29일 오후 3시 경찰, 피해자 집 방문했으나 부모 요청으로 조사 못함
30일 오후 10시 언론 보도 후 주엽2치안센터에 수사본부 설치
31일 김도식 경기경찰청장 대국민사과성명
오후8시30분 용의자 이모씨 검거, 범행일체 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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