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광형 칼럼] ‘특허괴물’에 맞서려면…

관련이슈 이광형 칼럼

입력 : 2009-08-16 20:35:30 수정 : 2009-08-16 20:35:3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대학가 돌며 버려진 특허 사들여

무형의 지식재산 소중함 깨달아야
‘특허 괴물’이란 이름의 새로운 괴물이 나타났다. 마치 과거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이 조선의 전국 방방곡곡을 뒤지고 다니며 광물이 매장돼 있을 만한 땅의 개발권을 싼값에 모조리 사들이던 형국과 흡사하다. 그 당시 땅속 사정을 잘 모르던 사람은 그냥 놀고 있는 땅을 산다니 도장을 찍어 주었다. 나중에 그 땅에서 어마어마한 금이 나오고 석탄이 나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최근 대학가에 나타난 특허 괴물이란 이름의 회사는 쓸모없이 버려진 특허를 사들인다. 하나씩 낱개로 가치를 헤아려 사는 것이 아니고 몇 년간 등록한 특허 수십 개를 통째로 사들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특허가 있다고 생각하는 연구자 입장에서는 입맛이 당기는 제안이다.

또한 이런 특허 괴물 회사들은 전 세계 사람을 상대로 아이디어를 끌어모은다. 이렇게 선정된 아이디어를 몇 천달러, 몇 만달러에 사서 특허로 출원한다. 아무도 나무랄 것 없는 매우 합법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다. 그러나 복선이 깔려 있다. 이렇게 많은 지식재산을 모아 놓으면 그중에 하나는 산업화돼 있는 제품과 연관되기 쉽다.

수십만 개 낚싯바늘 중에 하나만 걸리면 시비를 걸어 엄청난 특허료를 요구할 것이다. 아마 한두 건에 그동안 투자한 모든 돈을 뽑으려 할 것이다. 무서운 이야기다. 힘들여 연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제품을 만드는 것도 아니면서 초기 자본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식재산을 끌어모아 이를 무기로 사업을 한다니 세상이 얼마나 바뀌고 있는지 실감나게 한다.

이런 지식중심 사회에서 사는 방법으로는 첫째, 무형의 지식재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는 기술을 소홀히 생각하고 기술자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남이 개발한 지식을 공짜로 쓴다든지 헐값에 사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특히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기술자를 제대로 대우해야 한다. 기술자도 자존감이 충만해야 스스로 포기하고 외국에 내다 파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둘째, 기업이 대학에 연구용역을 주어 기술을 개발하게 하면, ‘실시권’만 가져가고 ‘소유권’은 남겨주는 것이 필요하다. 연구란 것이 어느 날 갑자기 결과를 내지 않는다. 그 이후에 하는 연구도 대체로 앞의 결과물과 관련돼 있다. 만약 어느 회사가 원천기술을 소유하게 되면, 그 후속 결과물에 대한 권리까지 주장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연구자는 분쟁 가능성 때문에 후속 연구를 하려 하지 않는다. 필자도 이런 경험이 있다. 이미 전문성을 가진 연구팀이 후속 연구를 포기한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손실이다. 회사를 위해 기술이 경쟁업체에 가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도 있다. 소유권을 가진 연구자가 다른 회사에 사용권을 줄 때는 회사의 동의를 구하게 하든지, 또는 회사가 일정 기간 동안 그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로 제한한다. 이것이 바로 미국에서 하고 있는 방식이다.

셋째, 지식재산을 획득하고 관리 보호하는 일이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이라 인식해야 한다. 그동안에는 지식재산이란 생기면 간헐적으로 등록하는 것이라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괴물’이 나타나는 사회에서는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어떻게 무형의 지식을 재산으로 만들고, 이것을 보호해 가치를 발휘하게 할 것인지 체계적인 연구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도 ‘특허 펀드’를 만들어 특허를 사업화하는 일을 적극 지원해야겠다. 특허청에서 대학에 교육프로그램 개설을 지원하고 특허 펀드를 만들 것이라니 다행이다.

이제 21세기는 지식사회로 변하고 있다. 연구도 하지 않고 공장도 설치하지 않는 특허 괴물이 엄청난 ‘힘’을 휘두르는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지식’이 바로 ‘힘’인 시대가 오고 있다. 지식사회에서 특허 괴물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선 지식의 소중함을 깨닫는 일부터 시작돼야 하겠다.

KAIST 바이오뇌공학과 미래산업 석좌교수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
  •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
  • 수지 '하트 여신'
  • 탕웨이 '순백의 여신'
  • 트리플에스 코토네 '예쁨 폭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