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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판] “파독광부·간호사 눈물이 오늘의 한국 만들어”

입력 : 2010-01-14 15:48:09 수정 : 2010-01-14 15: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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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태 전 국회의원 1960년대 우리나라는 너무도 가난했다. 국민소득 80달러로 매년 이어지는 가뭄과 흉년, 그리고 1950년대까지 지속되던 미국의 원조도 끊어져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끼니를 이어가던 시절, 그래서 쌀밥 한번 실컷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때 당시 우리나라는 유엔에 등록된 120개 나라 중 인도 다음으로 못사는 나라였다.

◇신현태 전 국회의원
1963년 12월21일 247명의 한국의 젊은이들이 난생 처음 보는 대형 여객기를 타고 그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벽을 넘어 기적의 나라 독일을 향해 떠났다.

건국 이래 최초로 정부가 주선한 나라와 나라 간의 계약에 의해 집단 취업의 첫발을 내디딘 이들은 낯설고 귀 설고, 그리고 입 설은 독일을 향했다. 사랑스러운 가족과 이별해야 했지만 3년의 계약이 있었기에 아픔도 잠시 그들은 꿈에 부풀어 조국의 땅을 떠났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어냈던 독일 공업의 심장부인 루르 탄광지대로 꿈을 가슴에 품고 간 것이다. 벌써 46년의 시간이 흘렀다. 인력이 부족한 독일은 일본, 터키에 이어 한국과 기술인력 교류협력을 맺게 됐다. 1963년 12월 처음으로 파견된 젊은이들은 지상교육을 받고 안전에 관한 제반 교육을 숙지한 후 지하 채탄 막장에 투입돼 일하게 됐다. 그 후 1964년 10월, 11월에도 계속 파견됐으며 1977년 47진까지 총 7936명의 우리나라 젊은 광산 인력이 독일 탄광에서 일하게 됐던 것이다.

지하 700∼800m의 수직으로 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석탄 막장으로 향한 그들은 숨막히는 지열로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쏟아졌고, 작업 막장 온도가 섭씨 30도가 넘는 현장에서 고통을 이겨가며 꿈을 이루기 위해 독한 마음으로 힘든 날을 보냈다. 전쟁터와 다르지 않는 막장 작업은 생사를 넘나드는 현장이었다.

3년 동안 그곳에서 참고 이겨냈던 그들은 그 후 공부하여 의사, 교수, 전문 기술자, 광산의 최고 경영자가 돼 캐나다, 미국, 호주,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사업가, 예술가 등 많은 전문가로 변신할 수 있었다. 독일 탄광 바로 그곳이 있었기에 이러한 오늘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1963년 12월 8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됐던 그때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에게 차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독일의 루르 탄광지대를 방문해 파독 광부들에게 “여러분 이게 무슨 꼴입니까? 여러분의 새카만 얼굴을 보니 내 가슴에 피눈물이 납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직까지 이렇게 못사는 나라이지만 후손들에게 잘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 그 말을 들었을 땐 젊은 광부, 간호사들은 손을 불끈 쥐고 꼭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분단의 아픔을 딛고 우뚝 솟아오른 독일에 파견된 젊은 광부와 간호사들,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은 고향으로 송금돼 조국 근대화의 종자돈이 됐다.

1967년 그들이 송금한 돈은 대한민국 1년 총수출액의 36%에 해당되는 큰 돈이었으며 조국 근대화의 기초가 되었으니 얼마나 값진 돈이었는가.

그들의 땀의 대가는 경부고속도로, 제철소, 화학 공장 건설의 종자돈이 됐다. 그들의 희생이 국가 산업발전의 부싯돌이 됐고 오늘이 있게 된 것이다. 그 땀이 없었다면 지금 46년이 된 이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날을 잊지 말고 그날을 버리지 말고 그날을 거울삼아 우리가 일구어낸 경제 발전 선진국 길이 막히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 그때보다 더 큰 시련이 닥쳐올지도 모른다. 결코 그때의 고통스러웠던 날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09년 12월 19일 파독 광부들의 모임인 (사단법인)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는 독일 중부 ESSEN 지역에 파독 46년 만에 파독광부 기념회관을 마련하고 개관식을 거행했다. 그들이 지난 시절 독일 광산지역에서 겪었던 애환과 역경을 자료로 남기는 전시관을 비롯해 문화행사를 치를 공간을 갖게 돼 이제 그들과 그들의 2세들이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느끼며 우리의 문화를 독일에 전할 좋은 장소를 마련하게 되어, 파독 46년이 지난 오늘 독일에 남아 살아가는 재독 교민들이 마음의 안식처를 갖게 된 것은 늦은 감이 있으나 다행스러운 일로 생각된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오늘날에 세계 12위권의 경제 대국이 됐다. 오늘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종자돈을 마련해 주었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에게 이제 우리 정부와 국민은 무언가 큰 보답을 해 그들의 땀과 눈물을 위로해야 할 것이다.

황온중 기자 ojhw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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