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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달라이 라마 거침없는 해외 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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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11-26 20:59:00 수정 : 2015-06-21 17: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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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제지 뚫고 ‘티베트 독립 힘싣기’ 행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14세의 거침없는 외유 행보가 주목된다. 달라이 라마는 최근 오스트리아, 독일,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을 순방하면서 활동 외연을 넓히고 있다. 반면 달라이 라마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중국 정부는 “종교 활동을 빙자해 티베트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주 일본을 방문한 달라이 라마는 후계자 문제와 관련,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후계자를 선출하겠다”는 중대 발언을 했다. 그는 “나는 20년 전부터 후계자 문제를 생각해 왔다. 티베트 민중은 달라이 라마 제도가 계속되기를 바란다”며 “고승들이 민주적으로 선출하는 방식(교황 선출 방식)이나, 내가 (생전에 직접) 후계자를 지명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원래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살아 있는 부처(活佛)’가 입적한 뒤 그의 ‘환생자’로 인정되는 어린이를 후계자로 삼는 것이 전통이다.

달라이 라마가 종교적 전통을 벗어나면서까지 후계자 선정 방법에 변화를 주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속뜻에는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숨어 있다. 중국 정부가 올 들어 달라이 라마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전생과 활불의 인정권을 사실상 당국이 갖도록 하는 규칙을 공포했기 때문이다.

1989년 티베트 불교의 제2인자인 판첸 라마 10세가 사망했을 때 중국 정부는 이미 달라이 라마 측의 판첸 라마 인정권을 부정하고, 스스로 어린이를 물색해 지금의 판첸 라마 11세로 즉위시켰다. 중국 정부는 앞으로 티베트 불교의 제1인자로 독립운동을 이끄는 달라이 라마의 사후에도 화근을 없애기 위해 후계자를 직접 지명할 것으로 전망된다. 달라이 라마가 생전에 후계 문제를 확실히 해두려는 것은 이 같은 중국 당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중국에서는 지난 8월 쓰촨(四川)성 간쯔(甘孜)티베트족자치주 리탕(理塘)현에서 정부의 활불 인정권 행사에 반대하면서 달라이 라마 14세의 복귀를 요구하는 주민들과 무장 경찰이 충돌하는 등 티베트 독립과 관련한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종교와 인권 문제를 내세운 달라이 라마의 최근 외유 행보가 결국은 티베트의 독립 문제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 9월23일 중국 정부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이뤄진 달라이 라마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회담은 티베트 독립과 인권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다시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독일 정부 수반으로는 처음 달라이 라마를 만난 메르켈 총리는 “티베트의 문화적인 자치를 지지한다”며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해 중국 정부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후 중국과 독일 양국 정부 간 대화가 단절됐고 양국 간 상공인 회의도 무산되는 등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달라이 라마의 미국 방문도 중국 정부를 자극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백악관에서 부인 로라와 함께 달라이 라마를 접견한 데 이어 17일 열린 달라이 라마에 대한 미 의회의 골드메달 수여식에도 참석했다.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에서는 중국 정부가 달라이 라마와의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하면서 “달라이 라마를 존경한다”고까지 말했다. 중국 정부는 즉각 주중 미국대사를 불러 강력히 항의했다.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는 국제사회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며 중국민의 감정을 심각하게 손상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미국이 ‘달라이 라마’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중국을 압박하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지난주 중국 정부가 미국 항공모함 키티호크호(號)의 홍콩 입항에 대해 ‘허용→불허→허용’으로 입장을 번복하며 미국을 난감하게 한 것도 달라이 라마의 방미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달라이 라마의 지난 15∼23일 일본 방문에 대해서도 중국 정부는 불쾌감을 나타냈지만 가시적인 조치는 나오지 않고 있다.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 시대에 빚어졌던 냉각관계를 청산하고 중·일 우호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한 데다 달라이 라마와 일본 정부 관계자 간 공식 면담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달라이 라마의 행보는 거침없을 가능성이 높다.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문제가 동아시아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달라이 라마는 일본 방문 시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티베트(시짱·西藏)자치구의 상황에 대해 “지난 몇 년간 가장 긴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티베트 민중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이 강화되는데 이는 중국 정부의 회유책이 성공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며 “내년 8월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정부는 위신을 지키기 위해 강권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달라이 라마 방한 올해도 무산 왜?

지난달 20일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국정감사 현장.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채 의원이 느닷없이 달라이 라마 문제를 거론했다. 요점은 문화부 장관시절 한국의 종교계 인사들이 인도에 있는 달라이 라마를 만나려고 하는 데 닝푸쿠이(寧賦魁) 주한 중국 대사가 찾아와서 항의하며 이를 막아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달라이 라마가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솔직히 기가 막혔다”며 “우리 사회에서는 (정부가) 이런 문제에 간여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고 회고했다.

사실 달라이 라마는 우리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종교계 등이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추진하지만 정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중국 정부를 의식한 측면이 있다. 올해 종교계, 학계, 시민단체 인사들을 중심으로 추진해온 달라이 라마의 방한도 비자 발급이 거부됨으로써 무산됐다.

그렇다면 달라이 라마의 방한이 성사되면 약(藥)이 될까, 독(毒)이 될까? 국제적으로 인권을 중시한다는 이미지를 높일 수 있어 한국에 좋은 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중 관계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독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만만찮다. 대만 문제나 달라이 라마 문제를 중국 견제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미국과 같은 강대국과 한국은 다르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방한으로 불어닥칠 후폭풍을 한국이 감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설명이다. 지난 9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달라이 라마를 만난 뒤 야기된 양국 간 경색국면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달라이 라마의 방한 문제는 철저히 국익 차원에서 따져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티베트는?

7∼9세기 티베트족이 세운 토번(吐蕃)왕국은 티베트 고원을 넘어 중앙아시아까지 넘본 강성한 국가였다. 

7세기 송첸감포왕은 당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화해 조건으로 당나라 문성공주를 왕비로 삼기도 했다. 원(元)·명(明)·청(淸)은 끊임 없이 티베트 지역을 편입하려 시도했다. 인도와 연결된 전략 지역이어서 인도의 영향력에 포섭되거나 강력한 국가가 수립되면 중국 안보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도 현대에 들어오기까지 티베트인들의 불굴의 기상을 꺾을 수는 없었다. 

1951년 중국군이 티베트를 무력 점령한 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평화협정’이 체결됐다. 1959년 라싸에서 중국군이 독립운동을 유혈진압하자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14세는 중국군의 포격이 쏟아지는 가운데 인도로 몸을 피해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다. 약 550만명으로 중국의 56개 민족 중 인구 10위다.


베이징=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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