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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나의 필름 포커스] 영화 '아델 H.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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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12-25 18:57:37 수정 : 2008-12-25 18:5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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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에 갇혀버린 아델, 소름돋도록 처절한 사랑 나는 이런 사랑을 이 영화 이전까지 만나본 적이 없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일방적인 사랑의 방식은 너무 아프고 지독하다. 그 강도가 얼마나 센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심장이 얼얼하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이자벨 아자니의 광기 어린 창백한 아름다움은 영혼의 상처가 각인된 얼굴의 미학 그 자체이다.

영화제 ‘불여우 열전’(프랑스 여배우 열전)에서 스크린으로 만나는 이 작품은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재능 있는 여성이 사랑의 광기로 파멸되는 ‘카미유 끌로델’, ‘라 비 앙 로즈’ 같은 프랑스 영화들 중에서도 압권이다.

누벨바그의 기수 프랑수아 트뤼포가 찍어나가는 미친 사랑의 절망담은 보는 이의 가슴에 메스를 대고 상처를 낼 정도로 치밀해서 소름끼치는 심리공포극처럼 보일 정도이다.

문학의 정신을 표상하는 빅토르 위고의 딸 아델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사랑이란 광기의 진전과 패망을 세밀하게 따라 잡는다.

1863년 미국의 핼리팩스. 아델은 사랑하는 핀슨 중위를 따라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건너온다. 그러나 이 사랑은 소통이 불가능하다. 아마도 한때 데이트 정도는 했을 법하지만, 아델의 강렬한 짝사랑만이 이야기를 압도한다. 핀슨은 그녀를 스토커로 치부하지만, 아델은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창안해낸다. 그와 결혼했다는 거짓말 편지를 아버지한테 쓰며 생활비를 구걸하고, 냉담한 핀슨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구성해 나간다. 그러면서도 위대한 작가로 누구나 아는 아버지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도록 자신의 성을 감추는 자존심만은 유지한다. 이 기이한 사랑병으로 피폐의 극단에 달한 아델은 카리브해 바베이도스까지 핀슨을 따라가 거리 아이들에게 조롱당하는 행려자로 전락한다.

사랑에 빠져, 상대에게 사랑을 애걸해 본다. 그래도 안 통하자 사랑을 강요하고 협박하는 이 경지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자기파멸에 빠지는 것이다.

한 남자를 사랑하고, 그만을 위해 살기로 한 여자는 착시현상(그도 나를 사랑하지만, 상황 때문에 표현을 못할 뿐이야라는 환상!)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재구성한다. 아자니 연기의 백미는 타고난 치명적 아름다움에 갇히지 않은 채, 사랑에 미친 여자의 참혹한 경지를 불타는 초록빛 시선에 담아 영혼의 전율까지 드러내는 데 있다. 부모에게 거짓 편지를 쓰는 대목에 깔리는 아자니의 목소리 연기력은 사랑이란 악령에 사로잡힌 심리상태를 소름끼치게 대변해 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전해주는 설레이는 삶의 파동이다. 그러나 사랑의 주체인 자신을 (백지영의 노래) ‘총맞은 것처럼’ 내던져버리는 주체 없는 (여성의) 사랑이란 얼마나 처절하게 영혼을 잠식하는지 음미해볼 만하다.

동국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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