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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나의 필름 포커스] 나는, 인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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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10-16 18:04:18 수정 : 2008-10-16 18: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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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만능주의 러시아, 판타지 소녀통해 풍자
고달픈 현실을 판타지로 이겨내는 것이 가능할까? 판타지영화는 그렇다고 답한다. 판타지야말로 도망갈 데 없는 막막한 현실의 탈출구라고. 러시아 영화 ‘나는, 인어공주’는 그런 마술적 판타지의 매혹으로 화면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인다.

알리사(마샤 살라예바)는 바닷가에서 엄마, 할머니와 함께 산다. 돈벌이에 지친 엄마가 거칠게 대해도 알리사는 인어공주라는 자신의 탄생설화를 지어내고, 발레리나를 꿈꾸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된다는 신념을 갖고 모험에 나선다. 깜찍하고 도발적인 알리사 캐릭터는 ‘아멜리에’나 ‘양철북’의 꼬마와 조응하다가, ‘제 5원소’의 초록머리 외계인과 조우한다. 그러나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넘쳐나는 대도시 모스크바에 던져진 그녀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에 더 가까워 보인다. 마술적 판타지가 넘쳐도 도식적인 해피엔딩을 거부하는 도발적 몸짓의 차이를 보이면서.

안나 멜리키안 감독은 알리사의 판타지를 통해 현재 러시아의 현기증 나는 자본주의 중독을 중의적으로 폭로한다. 인어공주 전설을 간직한 바다를 떠나 도달한 모스크바는 상품의 바다이다. 빈민가 고층 아파트를 뒤덮은 세탁기 광고판은 창문을 막고, 달을 파는 부동산업자는 팬트하우스에서 화려하게 살지만 밤마다 강에 투신자살하는 버릇이 있다. “달의 땅을 파는 것이나 지구의 땅을 파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라는 명대사에 덧붙여 부자들이 달에 땅을 사는 건 도망칠 곳을 찾는 것이라는 설명도 지구촌 자본주의 점령에 대한 아이러니이다.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엄마는 정육코너 아저씨와 틈틈이 연애할 생각에 딸은 안중에 없고, 알리사는 발 없는 거리의 친구와 24시간 쇼핑몰에서 향수로 물총싸움을 한다. 게다가 커다란 휴대전화 모형을 쓰고 거리홍보를 하며 사람들을 구경하는 알리사의 우스꽝스러운 몰골, 그것은 급기야 거대한 생맥주잔 모형을 뒤집어쓴 채 배신의 통곡을 하며 거리를 방황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이런 이미지들은 판타지 서사다운 유머 넘치는 일상이지만, 그 속내는 아프게 다가온다. 휘황찬란한 자본주의 파고를 즐기며 휩쓸려 가는 듯하던 알리사가 급기야 광고판을 잘라내 창문을 복원하는 모습은 영화의 핵심 이미지이다. 상품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물신적 마법을 거는 광고 모델의 거대한 얼굴에서 눈동자가 되어 빛나는 알리사의 존재는 물신에 찌든 대도시의 숨통 틔워주기로 보인다. 심지어 한국 최고의 광고모델이자 탤런트인 최진실의 돌연한 자살의 주는 충격이 여기서 반증되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많은 돈, 거대한 아파트, 호화로운 상품들, 그리고 그걸 거느리고 이루어지는 연애와 결혼, 그런 것들이 인간을 평안하게 만들지 않건만, 그럴 것이라고 유혹하는 자본주의 판타지가 멜리키안 감독의 번뜩이는 예술 판타지에 의해 고발당하는 이런 순간에 ‘유레카!’라고 외칠 만하다.

동국대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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