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유럽 재정위기가 스페인으로 번지고 천안함 사태가 확산되면서 국내 외환시장이 공황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가뜩이나 외국인들이 신흥시장 통화에 투자한 자금을 대거 처분하는 가운데 남북관계가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자 외국인들은 원화를 위험자산 목록의 맨 앞순위에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외환당국은 시장이 과열되자 개입에 나섰지만 나라 ‘곳간’을 풀어 환율을 방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금융시장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25일 환율 폭등의 ‘주범’은 외국인들이다. 최근 외환시장은 주식시장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데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에서 최근 7거래일 연속 팔아치운 자금이 3조원을 넘는다. 원화를 달러로 바꿔 거둬가면서 달러 공급의 공백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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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급격하게 상승한 25일 서울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잠시 허공을 쳐다보고 있다. 송원영 기자 |
원화 매도 공세는 남유럽 재정위기가 확산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포트폴리오가 급격하게 안전자산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이다. 더구나 유럽은 더블딥(경기 이중침체) 우려가 커지고 미국은 경기가 고점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데다 국내는 지정학적 위험이 커지자 투자자들의 공포감은 극대화되는 양상이다. 심각한 것은 당분간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마땅한 소재가 없다는 점이다. 스페인 중앙은행이 최대 저축은행인 카하수르에 긴급 구제자금을 지원키로 결정하면서 재정위기는 주변국으로 눈덩이처럼 확대될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국내 상황도 남북이 ‘강대강’으로 치달으면서 이번 사태의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외환시장 불안이 예상외로 커지자 ‘이상 징후’는 없다고 자신하던 정부와 금융당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부랴부랴 시장개입에 나서는 모습이다. 외환당국은 이날 오전 “대책을 강구하겠다”며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환율이 계속 폭등하자 장 종료 30여분을 남겨두고 실제 개입에 나선 것으로 시장참여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장중 60원 넘게 오르던 환율 상승폭이 막판에 35원대로 줄어든 만큼 외환당국의 개입은 일단 과열을 막는 데 성공한 셈이다. 외환당국이 쏟아부은 자금은 3억∼4억달러대로 추정된다.
한국은행은 금융시장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이날 통화금융대책반을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한국조세연구원도 세미나를 열어 단기 외화자금의 급격한 유출입을 막기 위해 당국이 외환시장에 거래세(토빈세)를 부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팀장은 “리먼 브러더스 사태 때처럼 환율이 1600원 가까이 폭등하지는 않겠지만 남북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는 상황까지 겹쳐 당분간 외환시장 불안이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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