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기회비용 피해 수백억 달할 듯 산업은행 직원 L(44)씨는 최근 자신의 1000만원짜리 주택청약예금 계좌를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2001년 가입 이후 예금이자를 해마다 도둑맞았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이자는 1년 단위로 지급되는데, 인출하지 않아 계좌에 그대로 쌓여 있다. 문제는 누적 이자에 전혀 이자가 붙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입 이듬해 발생한 이자 48만5000원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48만5000원이다.
이런 식으로 L씨 예금계좌에 8년간 쌓인 이자 총액은 306만5000원. L씨는 29일 “8년간의 청약예금 평균금리 3.83%를 운용금리로 적용하면 이자는 47만여원 더 많은 353만5028원이 되어 있어야 한다”며 “결국 은행이 고객의 원금이자를 공짜로 이용하면서 이자를 가로챈 셈”이라고 말했다.
원금 이자는 언제라도 인출이 가능하므로 청약예금 약정금리가 적용될 리는 없다. 적용된다면 그보다 훨씬 낮은 요구불예금 금리(최근 5년 평균 0.42%)가 현실적이다. 하지만 L씨는 “그 돈을 제때 인출해 후순위채 등 연리 6∼8% 금융상품에 투자했으면 3.83%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올렸을 것”라며 “은행이 이자에 이자가 붙지 않는다는 중요 정보를 알려주지 않아 자금 운용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L씨는 즉각 항의했고, 은행 관계자는 얼굴이 벌개진 채 “잘못된 일”이라고 인정했다고 L씨는 전했다.
이 같은 은행의 행태는 관련 약관 위반이다. 주택청약예금 특약 1조에 따르면 청약예금 거래에는 특약과 예금거래기본약관, 거치식예금약관을 적용토록 돼 있는데 이자 지급에 관한 구체적 규정은 거치식예금약관에만 명시돼 있다. 거치식예금약관 3조(이자)는 ‘만기일 후 (이자를)지급 청구할 때는 만기일부터 지급일 전날까지 기간에 대해 예탁일 당시 사무소에 게시한 만기 후 이율로 셈한 이자를 더하여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K, W은행 등은 이 규정을 무시하고 있다. 또 K은행 측은 “2002년부터 요구불예금 계좌로의 이자 자동이체를 의무화했다”고 밝혔는데, L씨는 “현재까지 고지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L씨 사례를 일반화하면 피해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11월 말 현재 청약예금 가입자는 221만1920만명. 이 중 10년 이상 가입자가 28만5321명이다. 예금 가입자의 손실은 자금운용 기회 상실이란 ‘기회비용’ 개념으로 보면 적어도 수백억원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변호사, 금융전문가 출신의 고승덕 의원(한나라당)은 “주택청약예금은 1년 단위로 자동예치되지만 이자에 대한 이자가 붙지 않는다는 사실을 은행들이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며 “이자의 보통예금 자동이체가 전 금융권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류순열·황계식 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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