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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 역사' 사라지나… 국내 첫 영화관 단성사 최종부도 처리

입력 : 2008-09-25 10:23:34 수정 : 2008-09-25 10: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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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90년대 최고 전성기 구가… '흥행 바로미터'로
복합상영관 등장후 내리막길… "당분간 정상 영업"
한국 최초의 영화관 단성사(사진)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우리은행에 따르면 ㈜단성사는 지난 19일 은행 지점으로 들어온 15억원의 당좌를 결제하지 못해 23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이번에 부도 처리된 대상은 단성사의 건물주여서 당장 극장 영업에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부터 극장 체인 씨너스는 건물 내 상영관 전부를 3년간 임대해 ‘씨너스 단성사’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물 매각과 리모델링 등 향후 일정에 따라 건물 내 상영관이 폐쇄될 가능성이 크다.

씨너스 마케팅팀의 김현중 과장은 “계약기간도 많이 남아 있어서 우리가 먼저 단성사 브랜드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앞으로 건물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극장 영업 방향도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1907년 설립된 단성사는 그동안 ‘영화 1번지’ 종로에서 한국영화와 함께해 왔다. 단성사는 1919년 10월27일 우리나라 최초의 극영화인 ‘의리적 구토’를 상연한 데 이어 나운규의 ‘아리랑’(1926년), ‘춘향전’(1935년) 등을 개봉하며 일제강점기 한국 영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단성사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단관개봉 시절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극장가에서 단성사의 흥행 성적은 바로 해당 영화 흥행의 척도였다. 개봉일 극장 앞에 늘어선 관객의 줄이 얼마나 긴지가 영화의 성패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역도산’(1965년), ‘겨울여자’(1977년), ‘장군의 아들’(1990년), ‘서편제’(1993년) 등이 모두 단성사에서 장기 상영되며 흥행 기록을 세운 작품들이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멀티플렉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단성사는 본격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단성사는 2001년 재건축에 들어가 2005년 지상 9층, 지하 4층 건물에 총 7개관 1530석을 갖춘 멀티플렉스로 화려하게 변신했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한 부채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단성사는 지난해 11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2년째 자본잠식 상태가 이어지는 등 재무구조가 악화된 상태다. 지난해 매출액은 44억원으로 전년의 78억원보다 34억원 급감했다.

이성대 기자 
karis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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