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의 체질도 허약해진 상태다. 커지는 가계·중소기업의 부실 가능성에 고물가, 내수경기 침체의 위협을 받고 있다.
금융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위기가 전염될 수 있는 여지를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악재 쌓인 대외 여건=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외 여건은 언제 터질지 모를 지뢰가 널려 있는 것 같다. 미국의 금융위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 등이 모두 악재다.
그러나 가장 큰 악재는 역시 미국의 금융위기다. 미국의 금융시장은 국책 모기지 회사에 2000억달러가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진정되지 않고 있다.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를 휩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파문이 다음에는 어느 곳을 덮칠지 예측하기 힘든 형국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이번 파장이 국제 금융시장에 패닉을 불러오고, 외환·금융시장에 대형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금융불안이 커짐으로써 국내 투자 외국계 자금이 빠져나가고, 이에 따라 주식시장은 물론 외환시장까지 불안해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시장 일각에서는 메릴린치의 매각과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신청이 미국 내 금융불안을 종결짓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 금융불안을 안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리먼 파산, 메릴린치 매각의 국내 파장=리먼브러더스 파산과 메릴린치 매각 후 가장 염려스러운 점은 대형 금융회사 도산으로 시작되는 대규모 금융경색 현상이다. 금융회사 도산이 금융시장에 패닉을 불러오고, 다시 심각한 자금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달러 구하기 어려운 국내 기업과 금융회사는 더 큰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9월 위기설’을 불식시키기 위해 추진했던 10억달러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은 미국 투자자의 높은 가산금리 요구로 연기된 상태다. 정부는 “그렇게 비싼 금리를 주고 외평채를 발행할 생각은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 AIG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나오면서 상황은 돌변하고 있다. 미국의 투자자들은 최근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시장에서는 “국내 금융회사와 기업의 외화차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외평채도 언제 다시 발행할 수 있을지 점치기 힘들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된 징후는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우리나라 경제 위험도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외평채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 12일 190bp(100bp=1%)선에서 이날 최고 215bp까지 상승했다. CDS프리미엄은 신용위험을 회피하려는 채권 매입자가 신용위험을 부담하는 매도자에게 지불하는 일종의 보험 수수료다.15일 싱가포르 역외선물환(NDF)시장에서는 원·달러 1개월 선물환율이 장중 한때 지난 12일 서울시장 현물환 종가보다 13원 가까이 오른 달러당 1122.0원을 기록했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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