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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블로고스피어]인터뷰 1000명…세상을 소통시키는 '기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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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5-22 10:11:34 수정 : 2008-05-22 10: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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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블로고스피어]'작가' 블로거 서형 세상엔 특정 직업군으로 분류하기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형 작가’라고 적힌 명함을 건넨 서형도 그 중 한 명이다.

본명이 김민정(33)인 ‘작가’ 블로거 서형은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서형(瑞馨·상서로운 향기)’이라는 호를 쓴다. 역사·철학 분야 저술가인 남경태씨가 지어준 호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mediamob.co.kr/2bsicokr)만 보면 ‘서형’은 ‘법조 전문기자’나 ‘인터뷰 전문기자’에 가깝다. 서형은 그러나 스스로를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자평한다.

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고 ‘석궁테러’를 일으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를 면회하고 돌아온 ‘서형’을 19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의 손엔 ‘형법 전문서’가 들려 있었다.

김명호 교수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지난해 여름 청와대와 국회를 비롯한 이른바 권력기관 ‘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취재하던 중이었다. 대법원 앞에서 김명호 교수의 무죄를 주장하며 1인시위를 하던 시민을 인터뷰하게 된 것. 결국 ‘호기심’에 이끌려 지난해 8월28일 서울 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7차 공판을 직접 지켜봤다. 그의 블로그엔 이 재판 시작부터 현재까지 진행된 항소심 4차 공판까지의 재판 자료가 빼곡히 올라와 있다. 재판장과 판사, 변호인이 한 발언은 물론이고 그들의 표정과 몸짓, 말투까지 일일이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빈민을 비롯해 많은 사람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작가 블로거’ 서형이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자신의 인터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록을 모두 실명으로 올리던데.

“어떤 재판관은 방청석에 앉아 있는 나를 겨냥해 ‘이런 건 인터넷에 올리지 말라’고 으름장도 놓더라. 어떤 재판에선 판사가 속기와 녹취를 공개하지 않아 이후 검사한테 내용증명으로 내 블로그 주소를 적어서 보낸 적도 있다.”

지난 7일부터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는 김 교수 석방과 사법부 개혁을 촉구하는 교수들의 1인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서형은 지난 7일부터 매주 월요일∼금요일 이어지는 1인시위 현장에 나가 교수들을 인터뷰한다.

―힘들지 않나.

“이렇게 좋은 기회가 없을 것 같다. 내가 언제 한국 사회의 진보적 학자들을 요즘처럼 거의 매일 만나보겠나. 오히려 지금은 1인시위가 좀 더 길게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웃음)

서형이 하는 일이 꼭 기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기자’보다도 더 부지런히 기록하는 모습이 그랬다. “기자 했어도 잘했겠다”고 하자 “선천적으로 특정인을 도사견처럼 물어뜯는 데는 소질이 없어 불가능하다”고 너스레를 떤다.

“지금 하는 일이 기자와 다른 게 뭐냐”고 재차 물었다.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아주 다른 점이 있다. 기자들은 황우석 같은 유명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뻗치기(무작정 취재원을 기다리는 일)’를 하지만 난 우리 동네 세탁소 아줌마를 만나기 위해 세탁소 앞에서 뻗치기를 한다.”

실제로 그는 동네 세탁소 아줌마부터 김밥집 주인, 책 대여점 주인 등 1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화를 내는지 궁금해서 택시기사 아저씨나 비디오가게 주인 등 보통 시민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주제는 ‘나를 열받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보통사람들을 만나서 나눈 그들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모두 올렸다.

서형의 원래 목표는 ‘인터뷰 1000명’이었다. 지난해 6월 이미 1000명을 넘어섰는데도 서형은 인터뷰를 계속하고 있다. 애초 인터뷰는 사회학 책을 써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다. 수학책을 출간하기로 출판사와 계약하고 나서 사회학 분야까지 욕심이 났다고 한다. 인터뷰를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고 싶었던 욕구도 강하게 작용했다.

―인터뷰의 목적은.

“솔직히 처음 시작한 이유는 진실추구보다는 ‘사회소통’이었다. 내 키워드는 ‘소통’이다. 내 의도는 누군가를 물어뜯어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다.”
◇사회 역사 문화를 소재로 사법피해자, 빈민 등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싣는 서형의 블로그인 ‘서형 인터뷰’.

―왜 그렇게 기록에 집착하나.

“기록이 쌓여야 양질의 기록이 나오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많은 얘기를 듣고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서형은 이런 의미에서 블로그는 자신에게 ‘기록보관소’라고 말했다.

서형은 호기심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간의 인터뷰 흔적을 훑어보면 서형의 호기심이 작용하는 분야가 아주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명호 교수 사건을 계기로 사법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이 생겨 이들에 대한 인터뷰도 하고 있으며, 법조계에 대해 더 알아보기 위해 판사·변호사·검사 등을 100명씩 만나 인터뷰해 보겠다는 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판·검사·변호사들이 잘 만나줄 것 같지 않은데.

“나도 그럴 것 같기는 하다. 내가 잘하는 건 막무가내로 그냥 쳐들어가는 거다. 뭐 시도해서 안 되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다.”

사법 피해자 인터뷰를 하고 다니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종종 생긴다.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하며 세상에 알려 달라고 ‘돈봉투’를 건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황당했다. 내가 무슨 기자도 아닌데 자기들 얘기를 알려 달라고 돈봉투를 주다니 어이가 없었다. 이젠 그들의 억울한 하소연보다 팩트(Fact)에 더 집중한다. ”

돈봉투 받지 않는 서형도 어쩔 수 없이 돈을 받은 적이 있다. 그의 블로그를 방문한 누리꾼들은 지난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60만 원을 보내줬다. 블로그 방문자 수가 110만명을 넘어섰다고 하자 서형은 “방문자 수는 중요하지 않다. 마니아 독자가 얼마나 되느냐가 관건이다. 나는 진정성에 승부를 건다. 장기적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진정성이 핵심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폼을 잡는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꼭 해보고 싶은 두 가지 인터뷰가 있다. 농촌 인터뷰와 러시아 연해주 등지를 직접 찾아 새터민을 인터뷰하려고 한다. 전세금을 빼면 비용은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과학과 수학이라는 분야를 어렵지 않고 쉽게, 인문학적으로 풀이한 책을 쓰려고 노력했다는 서형. 2006년에 쓴 책 ‘철없는 전자와 파란만장한 미토콘드리아 그리고 인류씨 이야기’는 ‘서형의 엉뚱하고 기발한 과학교과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서형의 항해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하다.

기획취재팀=김용출·김태훈·김보은 기자 kimgija@segye.com



프로필

●1974년 2월24일 제주 출생

●1996년 충남대 화학과 졸업

●‘철없는 전자와 파란만장한 미토콘드리아 그리고 인류씨 이야기’(2006년) 등 저술

●2남3녀 중 막내

서형이 제안하는 좋은 블로거가 되기 위한 팁

1. 정보성이 있어야 한다.

2.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공부하라.

3. 자기만의 색깔을 가져라.

4. 잡탕은 절대 안 된다.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5. 콘텐츠를 올리는 방식에 대해 많이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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