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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산물 '개발'…그 불평등의 역사

입력 : 2013-04-05 18:00:59 수정 : 2013-04-05 18: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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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통치 프로그램서 유래
전 세계에 걸쳐 빈곤확산 초래
성장담론 한계 이른 현실 분석
지속 가능한 대안적 모델 제시
일반적으로 ‘개발(development)’은 다 함께 잘사는 세계를 이루기 위한 경제성장을 의미한다. 그런데 실제로 개발은 인류에게 풍요와 행복을 가져다주었을까. 신간 ‘거대한 역설’(원제 ‘Development and Social Change’)은 이 같은 기대와 달리 개발이 전 세계에 걸쳐 불평등과 빈곤의 확산을 불러왔다고 말한다.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8%에 달하는 ‘고속개발국’ 인도에서 5세 이하 어린이의 절반 정도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는 게 대표적인 예다. 또 빈곤층 소액대출 사업이 오히려 악덕 사채업으로 변질하는 상황도 다른 나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코넬대 개발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국제개발 분야의 석학으로 꼽힌다. 이 책은 1995년 초판이 나온 이후 2012년 5판이 나올 정도로 개발 분야의 기본 도서로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다. ‘왜 개발할수록 불평등해지는가’라는 부제가 달린 ‘거대한 역설’은 자본주의 문명을 ‘개발’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의 대안을 모색한다.

저자는 산업혁명 이후 200년 동안의 근현대사를 ‘식민지배-개발-지구화-지속가능성 프로젝트’ 시대로 나눠 개발의 내용과 초점을 살핀다. 먼저 개발은 원래 제국주의 식민지배 시대에 식민 본국의 산업화와 식민지 주민 관리를 위한 일종의 통치 프로그램으로 등장했다고 지적한다. 기원 자체가 지배와 종속 같은 권력관계에 뿌리를 두는 등 처음부터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권력 문제였다는 것이다. 영국·일본의 인도·한국 식민지배를 생각해보면 쉽게 공감이 가는 설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이 등장하며 ‘개발 프로젝트’ 시대가 열린다. 이 나라들은 경제개발을 통해 국가의 존재 의의를 인정받고자 했고, 개발은 국가가 중심이 되어 진행하는 공적인 프로젝트였다. 이어 전개되는 ‘지구화 프로젝트’는 국가 대신 세계은행 같은 다자간 기구와 초국적기업이 개발의 주체로 등장한다.

‘거대한 역설’은 공동체의 가치를 외면한 개발이 불평등과 빈곤의 확산을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서울 강남의 마천루 아래 늘어선 판자촌이 성장 위주의 개발이 초래한 어두운 그림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지구화 프로젝트도 최근 들어 수명이 다했다는 게 저자의 인식이다. 저자는 현재 인류가 처한 파국적 상황을 폭넓게 소개하며 기존의 개발과 성장 담론이 지속 불가능해진 현실을 분석한다. 전 세계 인구 중 상위 20%가 전 세계 상품과 용역의 86%를 소비하고, 하위 20%의 인구는 1.3%만을 소비할 뿐이라는 수치는 지구화 프로젝트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저자의 관심사는 지속가능성 프로젝트를 극복할 대안 담론으로 이어진다. 환경과 식량 위기를 극복할 방법으로 주목받는 전통 방식의 농업·대체 에너지 개발로 대표되는 녹색기술 등을 살펴본다. 인도 히말라야에서 펼쳐지는 칩코 운동, 브라질의 식량 주권 운동, 제로 성장 같은 대안적 성장 담론도 제시한다. 얼마 전 한국 사회에서 터져 나온 ‘공정사회’에 대한 요구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의 하나로 이해한다. 저자는 ‘지속가능성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담론이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속가능성 프로젝트를 다른 말로 설명하면 ‘개발을 다시 생각하는 움직임’이다. 저자는 “개발을 다시 생각하기 위한 첫 단계로 아마 우리가 이해하는 발전의 관념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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