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개항기 조선·일본의 엇갈린 운명

입력 : 2013-03-23 02:14:08 수정 : 2013-03-23 02:14:0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문소영 지음/역사의아침/1만4000원
조선의 못난 개항-일본은 어떻게 개항에 성공했고 조선은 왜 실패했나/문소영 지음/역사의아침/1만4000원


“조선은 1876년 개항하여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기까지 34년간 무질서하게 좌충우돌했다. 망국을 향해 폭주하는 조선이란 기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들은 어디로 움직여가야 할지 몰랐다. 마부 수준의 기관사들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앞세워 조선을 압박하는 중국·일본·러시아를 ‘활용’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또 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고 혈안이었다. 그러다보니 기차는 더욱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신문 기자로 활동하는 문소영씨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조선과 일본의 역사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일본은 1853년 미국 페리 함대에 의해 강제 개항을 시작했지만, 하급무사와 지식인이 결합해 구체제를 해체하고 메이지유신에 성공하면서 단숨에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조선은 개항 이후 34년간 허송세월을 했으며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저자는 지도력의 차이가 개항기 조선과 일본의 명암을 갈랐다고 풀이한다. 일본 문명개화론의 선구자 후쿠자와 유키치, 메이지유신의 영웅 사카모토 료마, 이토 히로부미도 모두 하급무사 출신이었다.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자신들의 한계를 깨고 나온 하급무사들이 개화사상을 적극 수용해 중세적 질서의 일본을 근대적 국가로 변화시켰다. 반면 조선의 지역 유학자들이나 농민운동 세력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게 저자의 시각. 유학자나 농민들이 고수하고 있던 사상으로는 당대 시대 변화를 읽을 수도, 조선을 변혁할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김옥균은 왜 사카모토 료마가 되지 못했나. 이완용은 왜 이토 히로부미가 되지 못했나’ 등의 질문을 던지며 두 나라 지도자들을 비교해 살펴본다. 조선과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분석해놓았다.

정승욱 선임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