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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 지도자들, 위기의 시대 더 빛을 발했다

입력 : 2012-11-30 19:49:56 수정 : 2012-11-30 19:4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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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육체적 고통, 시련 경험한
루스벨트·케네디·마틴 루서 킹 등
현실 감각 뛰어나고 타인 아픔 공감
어려운 상황서도 강력한 리더십 발휘
광기의 리더십-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성공적 리더십과 정신 질환의 놀라운 관계 / 나시르 가에미 지음 / 정주연 옮김 / 학고재 / 1만8000원

나시르 가에미 지음 / 정주연 옮김 / 학고재 / 1만8000원
대선이 다가오면서 지도자의 자질 문제가 세간의 화두로 떠올랐다. 위기의 시대 지금 우리에겐 어떤 스타일의 지도자가 적합한가. 상식적인 대답은 대개 이런 종류다. ‘시대를 읽어내는 현실주의적 감각,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창의력, 그리고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놀라운 회복력을 갖춘 지도자라고….’ 이런 자질은 흔히 말하듯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지도자만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라면 수긍할 수 있을까.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지도자가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나시르 가에미는 신작 ‘광기의 리더십’(원제 ‘A First-Rate Madness’)에서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었던 지도자들의 특질을 도출, 종래의 통념을 뒤집는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지도자가 반드시 위기 때에도 성공적이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위기의 시대에는 정상인 지도자보다 정신 질환이 있는 지도자가 더 강력한 능력을 발휘했다는 것. 결론적으로 정신적 또는 육체적 고통을 경험한 인물들은 위기의 시대에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 보지 못하는 혜안과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위기의 시대에 빛을 발한 지도자들을 조사해 4가지 공통적 특성을 찾아냈다. 현실주의, 공감 능력, 회복력, 창의성이 그것이다.

실례로 위기에 처했을 때 현실과 현상의 부정적인 측면을 간파한 인물은 처칠과 링컨이었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며 진정으로 공감한 위인은 간디와 마틴 루서 킹이었다. 또 시련과 역경에 부딪혀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서는 빠른 회복력을 보인 인물은 루스벨트와 케네디였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낸 대표적 인물은 셔먼과 테드 터너였다. 천성적으로 교만하고 자신밖에 몰랐던 루스벨트는 소아마비와 정신적 합병증을 앓고 난 이후, 뛰어난 리더십과 인간성을 보였다.

반면 조지 매클렐런, 체임벌린, 리처드 닉슨, 조지 W 부시, 토니 블레어 등은 위기의 시대에 실패한 지도자로 묘사됐다. 저자는 이들을 ‘일반적 통념에 따르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호모클라이트로 이름 붙였다. 호모클라이트형 지도자는 평상시 훌륭한 양치기 역할을 수행했지만 위기 때는 거의 우왕좌왕했다. 이들은 난제를 앞에 놓고 낙관주의적 착각에 빠졌고, 위기 발생 시의 끔찍한 난국을 정신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워했다는 것. 특히 주변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고집했다고 한다. 이는 현실주의적인 시각의 부족으로, 공감 능력이 떨어지며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와 존 F 케네디의 비교 조사도 흥미롭다. 조울증이라는 양극성 장애를 앓았던 히틀러는 적절한 치료 없이 약물을 남용하다 세상을 파괴하는 악마가 되었다. 이와 달리 조울증에 성욕 과잉이었던 케네디는 측근들이 과다한 약물 사용을 막음으로써 목숨을 구하고 리더십을 극대화했다. 이 둘의 차이는 어디서 유래하는가.

저자는 나치 지도자들의 사례를 통해 입증해 보인다. 나치 지도자 경력자 24명을 상대로 2년여 면담 결과 이들 대부분은 미쳤거나 광신자였다는 통념과는 달랐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었고, 평균 이상의 지능과 도덕관념을 지녔으며 근검 절약 독일형 엘리트였다. 하지만 그들은 호모클라이트 지도자들처럼 자기 과신에 빠져 있었고, 공감 능력이 부족하며, 무엇보다 실패를 통해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일 국민 대부분이 나치 지도자들처럼 정신적으로 건강했으며, 다른 나라 국민이나 지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 이는 소름끼치는 사실이었다.

인터뷰에 응한 나치 지도자 24명은 ‘냉소적이고 운명론에 푹 빠져 있지만 정상적인 성격’ 등의 진단을 받았다. 저자는 이들이 자기 과신에 빠진 호모클라이트 지도자의 전형이었다고 진단한다. 다만 좀처럼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선동가 히틀러에게 조종당하는 약점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비단 이런 사례는 우리 역사에서도 적지 않게 존재한다. 고구려를 북방의 강자로 만든 광개토대왕이나 세종대왕, 정약용은 지독한 불면증 내지 편집증 환자였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저명한 정신의학자답게 다양한 사례를 솜씨 있게 버무린다.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인간 경험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지만, 지나쳐버린 사례들을 정성스레 찾아내 풀이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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