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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처럼 흐르는 부조리의 역사… 고통받는 민중의 삶 천착

입력 : 2012-10-11 23:50:12 수정 : 2012-10-11 23: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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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中 모옌 작품세계 ‘중국의 윌리엄 포크너’로 불리는 소설가 모옌(莫言)이 11일 조국에 사상 첫 노벨문학상을 안겼다. 모옌은 1981년 등단 이후 쓰고 있는 필명이고, 그의 본명은 관머우예(管謀業)다. “글로만 뜻을 밝힐 뿐 말이 없다”는 뜻의 필명처럼 모옌은 30년 이상의 꾸준한 글쓰기 끝에 마침내 세계문학의 최고봉에 올랐다. 모옌은 “고구려는 한국사 일부”라고 발언하고 소설가 황석영씨와 의형제를 맺는 등 ‘지한파’로 알려져 있다.

◆농민·노동자·군인 거쳐 소설가로

모옌은 1955년 산둥성의 시골 가오미(高密)현에서 태어났다. 대다수 동년배와 마찬가지로 학창 시절 문화대혁명의 풍파를 겪으며 순탄치 못한 젊은 나날을 보냈다. 학업을 포기하고 농촌에서 8년 동안 농사를 지은 그는 18세 때 면화가공 공장에 들어가 4년간 노동자로 일했다. 1976년에는 처음 고향을 떠나 인민해방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1981년 소설 ‘봄밤에 내리는 소나기’로 26세에 등단의 기쁨을 맛봤다. 모옌이 소설가로 명성을 떨친 계기는 뜻밖에도 영화 분야에서 찾아왔다. 그가 1987년 발표한 소설 ‘훙가오량 가족’을 원작으로 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이 1988년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것이다. 나귀 한 마리 값에 양조장 주인한테 신부로 팔려가는 중국 빈농 딸의 운명을 그린 ‘붉은 수수밭’은 세계 영화계의 극찬을 받으며 원작자인 모옌까지 덩달아 대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중국 다자문학상, 이탈리아 노니로문학상, 홍콩 아시아문학상,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대상,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등 각종 수상의 영예도 잇따랐다. 도서출판 문학동네 오영나 부장은 “순탄하지 못한 유년기와 청년기는 모옌이 중국 민중의 삶에 천착한 작품세계를 이루는 데 중요한 자양분이 됐다”며 “모옌은 대장장이·목수·농부·과부 등 힘 없고 고통받는 약자를 등장시켜 거대한 사회의 부조리함에 매몰되는 개인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냈다”고 평했다.

◆“고구려사는 한국사” 소신 발언도


올해 노벨문학상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이 펼쳐졌다. 수상자인 모옌은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일본), 살만 루슈디(인도), 이스마일 카다레(알바니아), 필립 로스(미국) 등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외신은 일찌감치 모옌과 무라카미의 ‘2파전’을 점쳤다. 서구 작가들의 노벨문학상 ‘독식’에 대한 반감이 거센 만큼 “이번에는 아시아 작가에게 기회가 갈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마침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제도를 둘러싼 영토분쟁 격화로 중국 내 반일감정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다. 모옌이 하루키를 꺾고 노벨문학상을 거머쥠에 따라 자존심 대결을 펼쳐 온 두 나라 국민의 희비가 엇갈리게 됐다.

모옌은 한국과 인연이 상당히 깊은 편이다. 2005년 5월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모옌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견해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개인적 견해로 고구려 문화는 한국의 문화가 분명하다”면서 “결국 한국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답했다.

모옌은 2007년과 2008년에도 연달아 한국을 찾았다. 당시 그와 만난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곽효환 시인은 “모옌은 한국을 좋아해 부인과 함께 관광을 오는가 하면 소설가 황석영, 나와 셋이서 의형제를 맺기도 했다”면서 “모옌과는 지금도 이메일 등으로 소식을 주고받는다”고 전했다.

김태훈·송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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