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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억압이 있는 곳에 공산주의 뿌리 내렸다

입력 : 2012-07-13 18:26:58 수정 : 2012-07-13 18:2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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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욕과 승자 독식이 제어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형태의 공산주의가 반드시 출현할 것” 경고
獨·伊 활발한 극우 운동, 공산주의 이념과 맥 닿아
“탐욕과 경쟁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에게서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 마르크스는 민중들에게 ‘아프냐’고 묻고 위로를 건넸다. 19세기를 풍미한 마르크스는 사라졌지만 지금도 그의 사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자본가의 탐욕과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왜곡된 세계관이 온존하는 한,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마르크스의 외침은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코뮤니스트-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로버트 서비스 지음/김남섭 옮김/교양인/3만6000원

칼 마르크스                      엥겔스
영국 옥스퍼드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800여쪽의 ‘코뮤니스트-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에서 공산주의 세계사를 회고하면서도, 향후 변종 공산주의가 태동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탐욕과 승자 독식이 제어되지 않는 한 새로운 형태의 공산주의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서비스 교수는 우선 20세기 초입에 공산주의가 왜 매력적이었는지 풀이했다. 예컨대 쿠바의 혁명가이자 문필가였던 피델 카스트로는 한때 소련식 공산주의를 적대시했다. 하지만 카스트로 역시 민중에 의한 혁명을 위해 레닌이 만든 폭력적인 소련 공산당과 타협했다. 억압적인 공산당이 장악한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으로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이상한 공산주의가 만들어졌다.

빈곤과 억압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공산주의는 어디에서나 뿌리를 내렸다. 20세기 초엽 혼란한 유럽에서 권력과 인권 침해의 부당함에 맞선 갖가지 움직임은 공산주의로 수렴됐다. 마르크스가 제창한 공산주의 이상은 모든 저항하는 약자들을 매료시켰다. 초기 공산주의 지도부가 유대인으로 채워진 것은 필연적이다. 많은 나라에서 유대인은 가난과 차별에 시달렸다. 마르크스가 유대 랍비의 후손이란 것 말고도, 많은 유대인이 공산주의 사상에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인도 공산주의자들은 영국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공산주의를 만났다.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공산주의에 의지했다. 베트남 독립을 이끈 호찌민은 체 게바라와 더불어 반미 운동을 벌이던 1960년대 유럽 젊은이들의 영웅이 되었다. 카스트로의 혁명 쿠바 정부는 미국의 위협에 맞서 소련을 파트너로 삼아 공산주의를 받아들였다. 소련의 지원이 멈춘 뒤에도 쿠바는 공산주의 국가로 남았다.

혁명군을 지휘하고 있는 피델 카스트로.
저자는 서론에서 “레닌·스탈린·마오쩌둥 치하에서 저질러진 압제와 대량 학살, 정치폭력 등이 언론에 폭로되었지만 그들에 대한 숭배는 멈추지 않았다. 공산주의 신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한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역사적 이미지였다. 신참들은 종래 질서를 거부하는 전혀 다른 정치·사회·경제적 시스템이 수립되기를 원했고, 공산주의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지적한다.

3000여만명을 굶어 죽게 만든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수세에 몰린 마오쩌둥은 마오주의로 무장한 문화혁명이란 것을 내세워 정적들을 처단하고 사회를 가혹하게 통제했다. 베이징 시내 홍위병들은 부자와 권력자들을 사슬로 묶어 시가지 이곳저곳 끌고 다니다 거리에서 재판했다.

피고는 무릎을 꿇은 채 뒤통수에 총알이 박히기 전에 자백을 강요받곤 했다. 죽은 자의 가족들에게 총알값 청구서를 보내는 일이 널리 행해지던 것이 문화대혁명 당시 관례였다.

저자는 “마오쩌둥이 특별히 악랄한 인물이라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체제가 문제였다”고 해석한다. “마오쩌둥과 스탈린 중 어느 누구도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이 아니었다. 그들을 괴물처럼 행동하게 만든 것은 공산주의 체제였다.”

스탈린은 죽었고 소련은 붕괴했으며, 중국 공산주의는 수명을 다했다. 하지만 공산주의를 꽃피운 빈곤과 부의 쏠림, 억압의 토양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기운이 태동할 가능성을 경계한다. “공산주의는 마지막 공산주의 국가가 사라졌을 때에도 오랫동안 사후의 삶을 누릴 것이다.” 저자는 공산주의의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고 진단한다.

현재 유럽을 휩쓸고 있는 경제 위기와 극소수 특권층에 쏠리는 부와 권력은 대다수 국민을 궁핍하게 만든다.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쳐나고 청년은 방황한다. 정보화·과학 기술이 발달하는 등 문명의 혜택만 달라졌을 뿐 19세기 중반과 지금 유럽 상황은 기막히게 닮아가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활발한 극우 운동은 이미 사라진 공산주의 이념과 맥이 닿아있다는 섬뜩한 증거들이 이 책에 나온다. 탄탄한 논리와 촘촘한 자료들이 저자의 연구 능력을 입증하는 책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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