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을 사랑방에 초청해 시조를 읊게 하는 등 풍류를 즐기던 할아버지를 닮아 저도 어려서부터 예술인들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사람의 마음을 단어 몇 개로 표현하는 시인들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시를 쓸 줄은 모르지만 수십 수는 줄줄 외울 수 있습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은 삼경인데,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황진이의 ‘청산리 벽계수야’ 시비 앞에서 시비공원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임항렬 개화예술공원 대표. |
“그 후 김소월(‘진달래꽃’)·한용운(‘님의 침묵’)·이조년(‘이화에 월백하고’)을 포함해 이효석 서정주 박두진 황금찬 이어령 고은 김지하 황송문 도종환 안도현 등 웬만한 시인은 모두 망라했습니다. 지금까지 시인 400여명의 시와 프로필, 국내외 조각가 작품 170여점을 오석에 새겨 우리 공원에 세웠습니다. 앞으로도 함석헌(‘그대 그런 사람 가졌는가’)을 포함해 추가로 엄선해 세울 예정입니다.”
처음에는 임 대표가 개인적인 취향으로 시인과 작품을 선정했으나 규모가 커지면서 한 문인단체에 의뢰했다. 하지만 시인 선정에 뒷말이 무성해 올해부터는 한국문인협회에 정식 의뢰했다. 문인협회는 올해 오석에 새길 시인 30명을 추천했다.
“돈을 보태겠으니 본인의 시비를 세워 달라는 청탁이 줄을 이었습니다만 일체 응하지 않았습니다. 시비공원의 권위와 시인 선정의 객관성을 위해 대상자 선정은 전문가단체인 문인협회에 100% 위임했거든요. 시비 400여개 중 250여개는 제가 그냥 세워줬고, 나중엔 최소 경비인 30만∼70만원씩 받고 있습니다.”
국유지를 포함해 17만9500㎡(약 5만5000평)인 개화예술공원은 세계 최대 규모의 다국적 조각공원을 지향한다. 그중의 한 프로젝트가 시비공원이고, 그 옆에는 세계 각국 저명 조각가들이 빚은 조각공원이 들어서고 있다. 조만간 트로트는 물론 국악·성악·민요를 망라한 가수와 작사가·작곡가의 노래와 악보 프로필을 새긴 노래비공원, 그리고 탤런트 배우 등 대표적 연예인들을 주제로 한 스타비공원도 차례로 세울 예정이다.
“노래비공원엔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최영섭을 비롯해 박춘서 반야월 홍난파 신중현 이미자 패티김 나훈아 남진 조수미 최영섭 등이 정해졌고, 배호 유족과도 접촉하고 있습니다. 배우로는 우선 이순재 최불암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임 대표의 계획은 장르별 비석공원을 넘어 ‘종합예술공원’을 만드는 것이다. 개별 시비나 스타비는 전국에 산재하나 장르를 망라한 종합예술공원이 없는 걸 안타깝게 생각해 시인·소설가·음악인·연기자·미술가·서예가·도예가 등 분야별로 엄선된 예술인들을 위한 종합예술공원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이스라엘 작가에 의뢰해 조감도까지 이미 만들었다.
개화예술공원을 장식하고 있는 한 외국 조각작가의 작품. |
임 대표는 예술성 없이 급하게 만든 초기의 시비석을 50% 정도 교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조각공원의 범위를 넓혀 대천해수욕장에서 유성까지 ‘조각로’로 확장시키겠다는 야무진 구상도 하고 있다. 오는 9월엔 보령세계문화예술축제를, 10월엔 역시 임 대표가 운영하는 모산미술관 주최 제12회 국제조각심포지엄을 추진하고 있다.
“스포츠축제는 나라를 옮겨다니며 치러지지만 예술축제는 붙박이축제입니다. 저는 조각심포지엄을 확대 발전시켜 조각엑스포나 조각올림픽으로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우리 예술공원에 38개국 대사·영사가 다녀갔고, 60여개국 저명 조각작가들이 작품을 남겼습니다. 민간외교로 이만한 게 또 있습니까?”
보령=글·사진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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