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레이’만큼 급진적이지는 않았지만 ‘스탠리와 아이리스’ 또한 하루하루 근근이 먹고사는 블루컬러들의 애환을 그려냈다. 바즈 루어만과 주로 함께해 온 촬영감독 도널드 매캘파인, 그리고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와 제인 폰다가 각각 ‘스탠리’와 ‘아이리스’ 역을 담담하게 완수해 냈다. 감정의 보폭이 심하진 않았지만 질 높은 에피소드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계속됐다.
컵케이크 공장에서 일하면서 두 아이와 철없는 동생네 가족까지 부양하고 있는 사별여성 아이리스, 그리고 공장의 주방에서 일하는 문맹 스탠리는 새로운 세대와 낡은 세대의 중간에 끼어 그네들의 짐까지 짊어진 채 어려운 현실 속에 살아간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풍요로운 마음을 지닌 이들은 아이리스가 스탠리에게 글을 가르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마음의 교류를 이어간다. 홀아버지의 죽음 이후 고립된 인생을 살아온 스탠리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끔 도와주려는 아이리스의 헌신과 사랑을 담은 작품은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밝은 주제도 아니었지만 은은한 기쁨을 머금은 채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슈퍼맨’, ‘스타워즈’를 비롯한 유명 블럭버스터 영화들,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대표작들을 작업하면서 어느덧 거장의 칭호를 받고 있는 영화음악가 존 윌리엄스의 숨겨진 걸작이 바로 이 작품이다. 사실 이 아름다운 멜로디는 존 윌리엄스치고는 소박한 구석이 있어 개인적으로는 또 다른 스티븐 스필버그 사단의 앨런 실베스트리, 혹은 데이브 그루신의 곡들로 착각하곤 했다. 사실 존 윌리엄스가 피아노를 두각시키는 편은 아니었던지라 피아노가 주로 등장하는 앨범의 분위기는 비교적 낯설었다. 그럼에도 기존 그의 그 어떤 작품들보다도 따뜻했다.
라디오에서 주로 접할 수 있던 친숙한 플루트 멜로디를 가진 메인 테마, 그리고 천진난만한 피아노 연주가 깨끗한 훈훈함을 전달하는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곡 ‘리딩 레슨즈’는 도입부만 들어봐도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스코어는 크게 모나지 않은 채 오케스트라를 바탕으로 피아노, 플루트, 그리고 따스한 클라리넷과 예민한 하프로 운용된다. 가끔씩 클라리넷은 스탠리, 그리고 하프와 플루트는 아이리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약간 더 낮은 키로 메인 테마를 변주해낸 ‘레터스’, 그리고 ‘리딩 레슨’의 조금 더 빠르고 활기찬 변주로 시작하는 ‘엔드 크레디츠’ 또한 싱그러운 여운을 남긴다.
타인의 삶의 무게까지 짊어진 넉넉하지 못한 소시민들의 우정, 혹은 로맨스는 인간에 대한 노장들의 따뜻한 시선, 명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싱그러운 음악을 통해 묘사됐다. 수수한 일상 속에 조용히 솟구치는 용기와 희망은 뻔하지 않게, 오히려 친밀하고 차분하게 관객들을 북돋아준다.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불싸조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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