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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바다사자’ 수난 실화 담은 그림책

입력 : 2011-05-27 20:06:10 수정 : 2011-05-27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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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욕으로 자연 파괴 ‘가슴 찡해’
어부는 조선인 사냥꾼은 일본인 묘사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왕조실록 정조 40권’에는 독도를 가지도(可支島)로 표기했다. 가지도는 사람을 닮은 희귀한 물고기 ‘가지어(可支魚)가 사는 섬’이라는 뜻이다. 이는 울릉도 어민들이 독도 바다사자를 ‘가지어’ ‘가제’ ‘강치’ 등으로 부른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독도의 옛 이름을 한글로 풀면 ‘바다사자의 섬’인 셈이다.

유영초 지음/오승민 그림/느림보/1만1000원
바다사자의 섬―독도 이야기/유영초 지음/오승민 그림/느림보/1만1000원

환경운동가이자 사회적기업인 풀빛문화연대 유영초 대표가 쓰고 2004년 국제노마콩쿠르 상을 수상한 오승민씨가 그린 ‘바다사자의 섬’은 우리나라 최동단에 위치한 보석 같은 섬 ‘독도’와 1900년대 초까지 그곳에 2만여 마리나 살던 ‘독도 바다사자’의 수난 실화를 담은 가슴 찡한 그림책이다.

먼 옛날 독도는 바다사자들의 섬이었다. 수많은 바다사자들이 어부들과 어울려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섬 앞바다에 커다란 배가 나타났다. 바다사자의 가죽을 노리는 사냥꾼들이 탄 배였다. 우두머리인 대왕 바다사자는 무리를 이끌고 사냥꾼들과 용감히 맞서 싸웠지만 불을 뿜어내는 총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고 만다. 대왕 바다사자는 살아남은 바다사자들을 모아 동굴로 숨어들지만, 새끼 바다사자와 어미 바다사자를 미끼로 유인한 사냥꾼들을 당해낼 재주는 없었다. 결국 대왕 바다사자는 세 발의 총을 맞고 숨을 거둔다.

그림책에 등장하는 실제 대왕 바다사자는 지금도 일본 돗토리현 산베자연박물관에 박제로 전시되어 있다. 박제 머리 부분에는 총알 자국 세 개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2m가 넘는 대왕 바다사자의 죽음은 1931년 일본 산인추오신보에 기사로까지 실렸다.
‘바다사자의 섬’은 인간의 탐욕이 자연을 파괴하는 모습을 극적이게 보여준다. 사냥꾼들의 목적은 단 하나, 가죽을 얻어 돈을 버는 것이었다. 당시 고급 가방과 군용 배낭의 재료로 쓰이던 독도 바다사자 한 마리의 값은 황소 열 마리와 맞먹을 정도로 고가였다. 책은 사냥꾼의 국적을 고발하기보다 섬의 원래 주인이었던 바다사자의 비극적 운명에 주목했지만, 자연스럽게 바다사자와 어울리는 어부는 조선인, 바다사자를 잔인하게 포획하는 사냥꾼은 일본인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 정부가 독도영유권의 근거로 주장하는 ‘시네마현 고시 40호’는 1905년 일본인 수산업자인 나카이 요사부로가 일본 정부에 (조선 영토인) 독도에서의 바다사자 어로독점권 중재를 요청하자, 아예 독도를 시네마현 부속 일본 영토로 공포한 것이다. 즉, 일본 정부가 독도에서의 어로독점권을 허가하여 일본이 독도를 영토로 관리하고 있다는 자료를 남긴 것이다. 여기에 러시아와 전쟁 중이던 일본은 그 기회에 독도를 영토로 편입하는 것이 전쟁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도 한몫했다.
나카이 요사부로의 다케시마어렵회사는 이후 8년간 1만5000여 마리의 바다사자를 남획, 독도 바다사자는 그 후 멸종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저자는 “한때 동해 바다를 누비다 이제는 멸종한 슬프고 외로운 종족, 독도 바다사자를 생각하면 쓸쓸하다. 훗날 자연사에는 우리 인간도 독도 바다사자처럼 멸종된 생물종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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