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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의 인문학 산책] <29> 안도 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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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5-10 16:08:47 수정 : 2011-05-10 16: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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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대한 경외, 사물사이 공백 두는 ‘間의 미학’
질서 존중 등 日 전통 중시
그는 건축가로서도 훌륭하지만
숱한 역경 극복한 사람됨과 인생 역정서도 배울점 많아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유한한 자원(예, 물자와 에너지) 속에서 유한한 시간(예, 자기에게 주어진 수명) 속을 살아가는’(윤석철, ‘삶의 정도’) 존재다. 자연 수명도 그렇고, 물자와 에너지도 무한하지 않다. 이 유한한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쓰는 문제는 사람으로서 잘 사는 문제와 직결된다. 게다가 개별자의 삶을 둘러싼 세계의 유동과 가변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펼쳐진다. “인간의 삶에서 자원과 시간의 낭비를 최소화하는 것은 당연하고 옳은 일이 된다. 인간이 소모하는 자원과 시간을 코스트(cost)라는 개념으로 묶으면, ‘코스트 최소화(minimization of cost)’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적함수가 될 것이다.”(윤석철, 앞의 책) 한정된 자원과 시간을 낭비한다면 삶의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코스트 최소화라는 목적함수는 인생 자산을 성공적으로 운용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다. 자신의 능력과 시간과 에너지라는 인생 자산을 코스트 최소화라는 목적함수에 맞춰 운용할 때 당연히 자기 분야에서 성공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능력·시간·에너지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그게 무엇일까? 열정과 도전 정신이다. 그것은 자신을 연소시키는 불이다. 능력·시간·에너지는 땔감이다. 땔감이 아무리 많이 쌓여 있어도 불이 없으면 그것을 태울 수가 없다.


안도 다다오(安藤忠雄·1941∼ )는 일본 오사카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다. 고등학교만을 졸업하고 독학으로 건축가가 된 사람이다. 책의 도판으로 그가 설계한 건축물들을 보았는데, 장식을 배제하고 단순미를 강조하는 그 건축물들은 매혹적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일본적 전통들, 즉 자연에 대한 경외, 사물 사이에 공백을 두는 ‘간(間)’의 미학, 질서를 존중하는 자세를 중시한다. 그런 기초적 바탕 위에서 저만의 건축 미학을 구현하는 그의 건축세계를 떠받치는 두 가지 요소는 단순함의 미학과 격렬한 ‘도전정신’이다.

그의 건축 미학은 거칠고 단단한 노출 콘크리트 마감으로 일관하는 금욕주의적 태도와 철저하게 기하학의 단순한 원리에 충실한 설계를 통해 구현된다. 건축물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자연 입지의 장애와 한계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매력적 요소로 활용하는 맹렬한 도전 정신은 그가 지향하는 건축세계의 핵심 미학으로 절묘하게 드러난다.

“위태로운 자리에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건물을 지은 원점에는 역시 인간의 순수한 도전 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건축을 철저히 거부하려는 것처럼 준엄하게 깎아지른 자연. 그래도 어떻게든 그 자리에 건물을 짓고 말겠다는 도전 정신.”(안도 다다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그는 건축가로서도 훌륭하지만, 역경을 견디고 걸출한 건축가로 우뚝 선 그의 사람됨과 순탄치 않은 인생 역정에서도 배울 바가 크다. 그에게는 보통사람이 갖지 않은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전문적 지식과 훈련이 요구되는 건축가들의 경쟁세계에서 대학교라는 체계적 지식 습득의 과정을 건너뛰고 독학으로 세계 수준에 도달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

“사무소 출범 때부터 나를 찾아오는 젊은이는 대개 혜택받은 환경에서 대학 교육을 받은, 사회적으로 말하자면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나처럼 거칠고 공격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 자체가 충격일 것이고, 이 수수께끼 같은 인종이 가차 없이 고함을 지르는 상황 자체가 공포였을 것이다.”(안도 다다오, 앞의 책)

스스로 고백하듯 그는 거칠고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그것을 인생의 자산으로 삼고,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도 그의 비범성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젊은 시절 한때는 프로복서를 하고, 6회전을 뛰는 선수로까지 발전한다. 그러나 일본 권투계 스타인 하라다 선수가 체육관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스피드, 파워, 심폐기능, 회복력이 자신과는 다른 차원이라는 판단이 서자 즉시 권투를 그만둔다. 스무 살 시절 헌책방에서 만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책을 만나고 충격을 받는다. 그 책은 헌책이라도 값이 꽤 비쌌다. 그는 나중에 그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가까스로 내 차지가 되자 그냥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도면이나 드로잉을 베끼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도판을 기억해 버렸을 정도로 르 코르뷔지에 건축 도면을 수없이 베껴 보았다.”

독학으로 건축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얼마 뒤에는 일본 근대건축의 영웅인 단게 겐조의 건축물들과 일본의 고건축을 둘러보는 순례여행을 한다. 스물네 살이 되던 해에 세계여행을 떠난다.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모스크바를 거쳐 핀란드,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을 돌아보고, 남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화객선을 타고 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을 거쳐 마다가스카르, 인도, 필리핀을 경유하는, 7개월 남짓의 긴 여정이다. 안도 다다오는 이 여행에서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파르테논 신전, 근대건축의 명작들, 안토니오 가우디와 그의 건축물, 그리고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들을 꼼꼼하게 눈으로 보고 온몸으로 감동을 느낀다. 혈기왕성한 20대에 도쿄에 가서 당시 아방가르드라 불리던 젊은 아티스트의 작업을 열심히 챙겨보며 내적 자극을 받는다. 그들에게서 남을 흉내 내지 말고 독창적인 것에 몰입하기, 기성의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기 따위의 내적 자극을 받은 것이다.

“기성의 것들을 부정하고 현재에 반역한다”는 것은 1968년의 세계적인 혁명 운동에서 시작된 시대의 거대한 흐름이고, 그것은 1960년대 신흥 경제대국으로 떠오르던 젊은 일본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이었다. 안도 다다오는 그런 시대와의 능동적인 소통을 하며 기성의 것들에 저항하고 현재에 반역하는 시대정신의 정수를 제 것으로 만든다. 그 결과 제 인생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새로운 것을 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현재에 반역하는 삶이라는 걸 뼛속 깊이 새길 수 있었다. 당시의 실험 예술가들에게서 수혈 받은 이 시대정신은 야생의 인간이던 안도 다다오에게는 정말 훌륭한 인생 자산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1960년대 말에 오사카의 우메다에 작은 건축사무소를 연다.

건축은 돈과 인력, 그리고 재료의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인 생산 행위다. 어디 그뿐인가. 건축주의 편협한 사고, 사회나 법규의 제약도 장애다. 건축은 여러 잡다한 장애를 뚫고 나오는 예술 행위다.

“건축은 표현 예술의 하나이며, 큰 자금과 많은 인력이 필요한 지극히 사회적인 생산 행위다.”(안도 다다오, 앞의 책)

그는 이 짧은 문장으로 건축의 본질을 꿰뚫는다.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다. 그가 설계하고 지은 건축물들은 잡다한 장애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애초의 착상을 밀고 나간 결과물들이다. 거주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 건축의 본질이다. 대개의 삶은 집과 함께 시작한다. 그런 맥락에서 집은 존재의 시원(始原)이다.

그는 1974년 초, ‘스미요시 나가야’의 설계를 시작한다. 폭 3.6m의 좁은 지형, 저비용 예산의 장애를 딛고, “극소라는 말로 표현해야 마땅한 대지에서 자연과 공생”하는 가정집이 탄생한다. 이 집을 설계하며 그는 과연 주거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싸웠다. 그 결과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생활이야말로 주거의 본질”이라는 대답이다. 안도 다다오는 이 작은 집의 설계로 건축계의 주목을 받는다. 그는 무엇보다도 강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누군가 집을 설계해달라고 찾아오면 이렇게 말한다.

“삶의 터를 잡고 산다는 것은 때로는 힘든 일일 수가 있다. 나에게 설계를 맡긴 이상 당신도 완강하게 살아 내겠다는 각오를 해주기 바란다.”(안도 다다오, 앞의 책)

금욕적이고 강인한 사람답게 그가 지향하는 건축도 “금욕적이고 강인하게 사는 사람을 위한 집”이다. 그는 집을 지을 때마다 안팎 모두 노출 콘크리트로 일관하는 금욕적인 공간을 만들고, 철저히 기하학에 의지한 단순한 구성을 고집한다. 왜 노출 콘크리트인가. 그는 1970년대 초부터 자신의 건축에 노출 콘크리트를 도입하는데, 그것은 미학적 의도에서만이 아니라 제한된 예산과 대지에서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마음에 그저 공간 체험만을 남길 수 있는 간소하고 강력한 공간. 벽이 잘라 놓은 공간 분할과 비쳐 드는 빛으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알몸뚱이 건축. 그 이미지를 실현할 벽에는 강력함보다도 섬세함이, 거침보다도 매끄러움과 감촉의 부드러움이 요구된다. 일상적으로 흔히 접하는 나무와 종이로 지은 집에 익숙한 일본인의 감성에도 부응할 수 있는 콘크리트여야 한다.”(안도 다다오, 앞의 책)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되는 그의 건축물들은 단순함으로 이룩한 빼어난 숭고미, 자연 입지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 어떤 장애에도 굴복하지 않는 강인함의 구현, 거친 자연마저 압도해서 일구는 웅대한 구성력 따위에서 우월하다. 그의 건축물 중에서도 특히 1988년 홋카이도에 지은 ‘물의 교회’와 1989년에 저예산으로 책정된 공사비의 압박 가운데 완공한 ‘빛의 교회’를 좋아한다. 벽과 천장이 모두 노출 콘크리트로 된 ‘빛의 교회’는 빛과 그림자의 절묘한 조화 속에서 엄숙하고 아름다운 공간이 구현된 건축물이다. 거친 콘크리트 박스에 개구부를 통해 강렬한 빛이 직선으로 비껴들자 공간은 돌연 숭고함으로 물든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건축 미학의 결정체는 바로 “극단적이다 싶을 만큼 절제하는 금욕적 생활에 대한 무의식적 동경”이 빚은 ‘빛의 교회’라고 생각한다. 안도 다다오는 무수한 실패를 딛고 일어선 사람이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아무런 뒷배도 없고 혼자 건축가로 일했으니 순풍에 돛 단 배처럼 살아왔을 리가 없다. 여하튼 매사 처음부터 뜻대로 되지 않았고, 뭔가를 시작해도 대개는 실패로 끝났다.”(안도 다다오, 앞의 책)

세계적인 건축가로 우뚝 선 그의 ‘성공 신화’ 뒤에는 무수한 실패의 쓰라림이 숨겨져 있다. 그는 패자부활전을 통해서 올라와 성공의 신화를 써나간 사람이다. 나는 그에게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았다.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가능성에 기대를 품고 애오라지 그림자 속을 걷고, 하나를 거머쥐면 이내 다음 목표를 향해 걷기 시작했고, 그렇게 작은 희망의 빛을 이어나가며 필사적으로 살아온 인생이었다.”(안도 다다오, 앞의 책)

혹시 당신은 이 사회의 패자라고 생각하는가? 안도 다다오에게서 필사적으로 사는 정신을 배울 수 있다. 강인하게 살아남으려고 저를 둘러싼 비우호적인 환경과 치열하게 싸우는 완강함 말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안도 다다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이규원 옮김, 안그라픽스, 2009

●안도 다다오, ‘연전연패’, 우동선 옮김, 까치, 2004

●후루야마 마사오, ‘안도 다다오’, 김미리 옮김, 마로니에북스, 2010

●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 : 안도 다다오가 말하는 집의 의미와 설계’, 송태욱 옮김, 미메시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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