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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을 매기는 한국은 야만적 사회

입력 : 2011-04-08 17:12:32 수정 : 2011-04-08 17: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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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개사회라고 업신여기는 케냐 마사이족에게서조차
‘장애’와 같은 용어는 없다”
베네딕테 잉스타, 수잔 레이놀스 휘테 편저/김도현/그린비/2만3000원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베네딕테 잉스타, 수잔 레이놀스 휘테 편저/김도현/그린비/2만3000원


“내로크(Naerok)족 사람들은 손이나 다리가 불편한 사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 발달이 좀 늦은 사람들을 일정한 손상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부른다. 더욱 희한한 것은 그러한 사람들의 몸에 내로크족이 즐겨 먹는 쇠고기나 돼지고기처럼 등급을 매긴다는 것이다.”

이 책을 옮긴 김도현씨가 역자 후기에 쓴 말이다. 역자는 “내로크족은 다름 아닌 한국인(Korean)의 철자를 거꾸로 적은 것인데 한국의 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풍자한 단어를 만들어냈다”면서 “한국 사회의 장애인관에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 개념의 균열과 해체를 모색하고자 한다”고 했다.

북유럽의 저명한 인류학자 베네딕테 잉스타와 수잔 레이놀스 휘테가 함께 엮어 지은 이 책에는 내로크족 문화와 달리 ‘장애’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차이’와 ‘손상’이 있을 뿐인 여러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현대 문명이 미개사회라고 업신여기는 케냐의 마사이족에게서조차 ‘장애’나 ‘disabled’와 같은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장애를 일으키는 각각의 상태를 설명하는 단어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가 하면 자이르(콩고의 옛 명칭)의 송게족의 장애인들은 정상적인 생활 내에 평범하게 통합되어 있다. 특별한 의식 없이 의학적으로도 크게 주목받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숨기지도 않는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2010년과 2011년, 장애인들 사이에선 ‘장애등급심사제도’가 뜨거운 이슈였다. 국민연금공단은 2007년 4월부터 장애 수당을 새로 신청하는 중증 장애인에 대해 장애등급을 매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장애인들은 등급이 하락하고, 활동보조 서비스 등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하루아침에 손발이 꽁꽁 묶인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 책은 특정 손상을 장애로 규정하고 여기에 등급을 매겨 차별적으로 관리하는 국가권력의 작동원리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장애인 올림픽에 나선 한 선수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자전거를 타고 역주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시각과 처지에서 벗어나 새롭게 문제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다른 문화의 사례와 양상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면서 “어떤 사회에는 장애정책의 시행을 위한 등급제가 존재하지 않는가 하면, 또 어떤 사회에는 ‘장애’라는 보편적인 범주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저자는 장애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장애에 차별적인 사회가 지금과는 충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재구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다른 ‘장애’의 의미들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간다. 동시에 차이가 차별로 구성되지 않는, ‘장애’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는 기회를 마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시혜적인 차원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장애인들을 똑같이 대하는 인식 변화가 선결돼야 한다 게 저자의 일관된 논지다. 이 책을 일독하면서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적·정책적 인식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새로운 시각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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