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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들의 수프에 침을 뱉는 게 나는 좋다”

입력 : 2011-02-18 18:03:35 수정 : 2011-02-18 18: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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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와 관련된 두 권의 책 동시에 출간
정규 교육 받은 ‘범생’과는 거리가 먼 어산지
“권력자들 상대로 한 폭로는 계속 이어질 것”
“권력자들의 수프에 침을 뱉는 게 나는 좋다. 이 일은 정말 재미있다.” 스웨덴에서 성폭행이란 파렴치한 죄목으로 기소된 호주 출신 줄리언 어산지가 보석으로 풀려나면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어산지는 21세기 첨단 IT 기술의 ‘파생상품’ 격인 해킹으로 지구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시한폭탄’이 됐다. 그는 천재적인 해커 기술로 어느 나라 어떤 조직의 메인컴퓨터에도 침투할 수 있다. 한 국가 정도는 간단히 뒤집을 수 있는 해킹의 파괴력은 입증되고도 남는다. 국가 기간망을 구성하는 컴퓨터망을 교란하거나 해킹으로 치명적인 정보를 확보하면 인명 손실 없이 훨씬 효율적으로 국가나 사회를 전복시킬 수 있다.

마르셀 로젠바흐·홀거 슈타르크 공저/박규호 옮김/21세기북스/1만5000원
위키리크스 -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마르셀 로젠바흐·홀거 슈타르크 공저/박규호 옮김/21세기북스/1만5000원

최근 북아프리카에 이어 중동, 중앙아시아로 거세게 옮아붙은 민주화 열풍이 좋은 사례다. 어산지의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부패상을 폭로하면서 시민 혁명을 촉발시켰고 23년간의 독재 정권을 뒤집었다. 민주화 열풍은 아프리카의 맹주 이집트로 번졌다. 어산지는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 정권의 비리와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전문들을 공개하면서 시민혁명으로 이어져 결국 무바라크 정권 종식과 민주 정부 출범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일련의 독재 정권 붕괴 사태를 두고 미국의 외교 전문 잡지 ‘포린폴리시’는 “첫 번째 위키리크스 혁명”이라고 명명했다. 위키리크스가 가져올 두 번째 혁명은 무엇이 될 것인가. 이에 때맞춰 ‘위키리크스’와 관련된 두 권의 책이 동시에 출간됐다.

‘위키리크스-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는 어산지와 밀접하게 접촉한 독일 일간 슈피겔지의 현직 기자들이 썼다. 이들은 2년여 전부터 어산지와 접촉하면서 각국의 중요 인물들과 연관된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폭로하기로 계획했다. 이 책은 그 어떤 저널리즘도 시도한 바 없고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사이트와, 이 사이트를 만든 기이한 해커 줄리안 어산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어산지에 대한 평가도 호의적이다.

저자들이 말하는 어산지의 생활은 단란한 가정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범생’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어린 시절은 제멋대로 먹고 자고 뒹굴면서 스스로 성장한 ‘어린 톰 소여’의 생활 그 자체였다. 어산지를 18살에 낳은 어머니 크리스틴 어산지만이 아들을 걱정하고 돌보는 정도였다. 37차례나 이사하는 집시 생활이었기에 학교 교육은 아예 엄두를 못냈고 마을 공공도서관에 파묻혀 스스로 깨우쳤다. 11살 무렵 컴퓨터 재능을 알아본 크리스틴은 조그만 코모도어 컴퓨터를 어산지에게 사줬다. 하루 종일 컴퓨터만 갖고 놀면서 성장한 어산지는 15살 무렵 해커 동호 모임에 가입하는 수준급 실력을 보였다. 어산지는 호주 정보당국 컴퓨터에 침입해 정보를 빼내는 실력을 보였고 그 덕분에 사회 교란 혐의로 경찰에 체포·기소돼 벌금을 물기도 했다.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는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2010년)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위키리크스라는 폭로 사이트는 5∼6년 전 어산지 등 해커 전문가 5명이 모여 결성했다. 어산지는 이들을 이끌고 각국 정부의 비밀 컴퓨터에 침입했고, 결국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에 접근하기에 이르렀다. 예컨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각국 정부 요인은 물론 주요 기업인들에 대한 도청을 지시하고 명령서에 서명한 사실도 폭로됐다. 미국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에 대한 도청은 물론이고 동선 정보, 생체 정보 등 해당 개인들에겐 치명적인 사생활을 거리낌없이 수집했다. 어산지 일행은 미 국방부 컴퓨터 침입 결과 이라크 침공에 대한 부당한 공격, 미군들의 민간인 살해, 미군기의 오폭에 의한 민간인 살상 등 미 정부를 궁지에 몰아 넣은 메가톤급 정보를 쏟아내 주요 언론사에 배포했다. 옛 소련이나 중국 같은 폐쇄적인 국가들이 하는 도청, 정보 도둑, 미행 같은 행태를 미국 정부도 똑같이 행했던 사실이 낱낱이 드러났다. 급기야 미국은 어산지를 체포해 입을 막도록 스웨덴 정부에 요청했고, 스웨덴 정부는 어산지를 성폭행 혐의로 체포하기에 이른다.

책에서는 클린턴 장관이 미국 외교 기밀 문서가 폭로되기 이틀 전 영국, 독일, 캐나다, 스웨덴, 스페인 외무 장관들과 긴급 협의를 갖고 ‘어산지 대책’을 논의하는 내용이 현실감 있게 그려지고 있다. 어산지가 슈피겔, 가디언 등 굴지의 언론들과 비밀 폭로를 협의하는 과정과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의 이중 인격적인 태도도 묘사된다. 저자들은 “어산지가 저질렀다는 성폭행이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남녀 간에 흔히 있는 합의 성관계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어산지는 정규 교육은 받진 못했으나 독서와 어머니의 교육으로 교양을 갖추고 있으며, 권력자들을 상대로 한 폭로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 지음/배명자 옮김/지식갤러리/1만3800원
위키리크스 -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 지음/배명자 옮김/지식갤러리/1만3800원


‘위키리크스-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은 어산지의 측근으로 위키리크스 대변인이었던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가 위키리크스 조직의 비밀을 폭로한 책이다. 돔샤이트-베르크는 위키리크스의 초창기 멤버이자 2인자로 활약했지만 어산지와의 불화로 지난해 9월 위키리크스를 떠났으며 위키리크스의 경쟁 사이트인 오픈리크스를 열었다. 이 책에서 그는 어산지의 첫인상과 여성 취향, 위키리크스의 운영방식 등에 대한 숨겨진 일화를 공개한다.

그는 “어산지는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자기 일을 할 수 있었다. 또한 매우 박식했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로 아주 독특한 의견을 갖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어산지가 점차 ‘독재자’로 변해갔고, 위키리크스 역시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고 비판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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