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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비상구는 없나

입력 : 2010-07-03 00:50:16 수정 : 2010-07-03 00:5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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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스 골드' 무너진 美 월가 금융시스템 대재앙 몰고온 파생상품
손에 잡힐듯 생생하게 그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세계 뒤흔든 금융위기
자본주의 본질 도발적 시선으로 진단
2008년 미국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돼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아직까지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뉴욕 월가의 주가 대폭락 사태 이후 세계 각국의 각종 구제금융 정책과 경기부양책 시행으로 경기가 살아나는 듯했으나, 최근 남유럽의 국가 채무위기가 불거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전문가들은 금융위기로 인한 피해가 20조∼40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한다. 금융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언제나 그렇듯 소액투자자, 주택자금 대출자 등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시민들로 귀결된다. 세계 금융위기의 근원은 무엇이고 본질은 무엇인가.

풀스 골드(FOOL’s GOLD)/질리언 테트 지음/김지욱·이석형·이경식 옮김/랜덤하우스/1만8000원
질리언 테트 지음/김지욱·이석형·이경식 옮김/랜덤하우스/1만8000원


‘글로벌 투자은행과 신용파생상품, 세계경제 위기의 진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풀스골드’는 세계 최고 권위의 경제지인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세계시장 분석을 담당하고 있는 스타 여성기자 질리언 테트의 비즈니스 논픽션이다.

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미국 월가의 금융시스템이 붕괴됐을까? 수조 달러의 자산이 어떻게 허공 속으로 사라졌을까?

이 책은 금융위기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부실 사태로 촉발됐다는 것을 상식적인 수준에서 알고 있지만 도저히 의문을 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은행들이 미쳤던 것일까. 사악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단순히 탐욕이 조금 과했던 것일까? 역사를 되돌아보면 수많은 호황과 거품이 있었다. (중략) 적어도 많은 전문가가 보기에 금융권은 자기 스스로 무너졌다.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이 문제에 접근할 때 던져야 할 질문은 단 하나, 도대체 왜?이다”라고 화두를 던진다.

◇세계 자본주의 상징인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 2008년 미국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돼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아직까지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한 채 세계 각국의 수많은 사람들을 실업과 실직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등 고통을 주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그녀는 ‘도대체 왜?’를 풀기 위해 JP모건 체이스의 최고경영자와 ‘모건 마피아’로 불리던 금융공동체 소속 인물들을 독점 취재하고,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을 포함한 금융계의 핵심 인물 수십 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JP모건 소속의 야심만만하던 한 집단이 금융의 연금술을 동원해 어떻게 금융권에 혁명을 몰고 왔는지, 그리고 그 혁명이 어떻게 사람의 통제를 벗어나서 제멋대로 날뛰게 되었는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낸다.

2008년 금융위기를 다룬 기사로 ‘올해의 영국 경제기자상’을 받았던 그녀는 금융위기의 근원을 파헤치기 위해 신용파생상품의 탄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94년 JP모건의 스와프팀은 미국 플로리다 한 호텔에서 열린 파티에서 은행을 오랜 ‘리스크’에서 해방시키는 신용파생상품이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의 싹을 틔웠다. 이 새로운 금융상품은 금융권에 천문학적인 부를 약속했지만 13년 후 세계 경제의 대재앙을 몰고 왔다. 당시 이 상품 개발에 참여했던 JP모건의 한 관계자는 2007년 동료에게 메일을 보냈다. “여기서 무슨 괴물이 태어난 거지? 귀여운 아이를 키웠는데, 나중에 자라서 흉악한 범죄자가 된 꼴이잖아.”

이 신용파생상품을 개발한 JP모건은 막상 상품의 위험성을 알고 주의했으나 경쟁자들은 덫에 걸려 좌초했다. JP모건은 스스로 ‘괴물’을 창조했으면서도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리더십과 조직문화로 위기를 극복했다는 내용은 이 책에서 부차적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성호 옮김/창비/1만5000원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성호 옮김/창비/1만5000원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는 슬로베니아 철학자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인 슬라보예 지젝(51)이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와 자본주의의 본질을 특유의 도발적인 시선으로 진단한 문제작이다.

지젝은 21세기 서두에 벌어진 심상치 않은 두 개의 세계사적 사건인 9·11테러와 세계 금융위기를 마르크스의 경구인 ‘처음에는 비극으로, 그 다음에는 희극으로(First As Tragedy, Then As Farce)’를 차용해 각각 비극과 희극에 비유하며 현재도 진행 중인 금융위기 사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진지하게, 가끔은 시니컬하게 분석했다.

그는 세계경제를 뒤흔든 미국발 금융위기와 이에 대처하기 위한 미 정부의 구제금융조치를 보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제적 상황 자체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는 그 같은 상황에 대한 정치적 반응을 분석하고 있다. 미 정부 구제금융조치를 대하는 우파와 좌파의 같고도 다른 입장을 바라보는 재치있고 날카로운 분석이 돋보인다.

금융붕괴 사태와 후속조치를 두고 좌파보다 오히려 우파 정치인들이 ‘가진 자’를 도우려는 미국 정부를 ‘사회주의적’이라고 비난했던 것을 지젝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지젝은 미 공화당의 보수주의적 포퓰리스트가 보여준 대책의 저변에 깔린 논리의 비일관성과 바로 그러한 모순적 논리의 필연성을 간파해낸다.

그는 구제금융안이 마이클 무어(미 영화감독)의 표현대로 ‘강도짓’이고 사회주의와는 아무 상관도 없지만 월가의 파멸이 노동자에게 입힐 타격을 고려하면 이유야 어찌됐든 결국 구제금융안을 발의하고 지지한 쪽이 옳았다고 본다. 지젝은 이번 위기가 보수적 질서를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금융위기가 발휘하는 일차적 효과는 자본주의에 대한 의문이라기보다 더 심도있는 ‘구조조정’을 강제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초석을 닦는 것이다. 지젝은 글을 어렵게 쓰기로 유명한데 이 책은 그나마 세계 금융위기의 본질을 사례를 들며 쉽게 풀어 쓴 글이다. 그렇다고 지젝이 금융위기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서 금융위기의 문제에서 연관된 문제들, 즉 더 폭 넓은 문제들로 논점을 옮겨갔다. 하나는 변화하고 있는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 다른 하나는 재주장될 뿐 아니라 재발명되어야 할 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다.

‘1부 멍청아, 그건 이데올로기야’ 편에서 탈식민지적 의존 상태의 사례로 한국 기업인 대우 로지스틱스가 마다가스카르의 농지 320만 에이커를 99년간 임차했다는 내용을 인용한 것이 흥미롭다.

홍성일 기자 hongs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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