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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과정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그려낸 소설가 강동수씨. 그는 “가능한 대로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하려고 애썼지만 어디까지나 평가는 독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
제국익문사의 일원인 이인경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로, 그가 전개하는 이야기 속에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우범선을 중심으로 박영효 김옥균 같은 급진 개화파들의 입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인경은 한때 그들과 노선을 같이 했다가 황제를 모시는 쪽으로 돌아선 ‘장동화’라는 인물의 수하로 잔존 개화파들의 ’음모’를 분쇄하는데 일조하다가, 끝내 망실돼버린 나라의 외로운 테러리스트가 되어 만주에서 일본 헌병대에 잡혀 죽어가면서 이 모든 이야기를 회고한다. 이인경은 부친이 우범선과 함께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다는 사실로 인해 복합적인 감정을 지닌 캐릭터로 설정돼 있다. 그가 암살 위기에서 살아난 것으로 설정한 우범선을 일본에 공작 차 갔다가 만나고, 그의 비망록을 통해 ‘친일 국사범’으로 알려진 그의 ‘변명’을 접하게 된다. 우범선은 죽어가면서 한때 동지였던 장동화에게 이렇게 항변한다.
“이 무지한 자야! 너는 어찌 천하의 대세에 그리도 어둡더란 말이냐. …나라의 기둥이 무너지고 있는데 썩은 서까래만 껴안다가 깔려 죽을 작정이더냐. 너는 일찍이 합중공화(合衆共和)의 나라를 세우겠다던 그 맹약을 잊었단 말이냐.”(2권, 274쪽)

강동수씨는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장편소설로는 처음 발표한 이 작품에서 충실한 취재와 탄탄한 문체를 바탕으로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저력을 과시한다. 그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우리 역사의 가장 고통스럽고 민감한 대목의 하나인데 자칫 소설로 면죄부를 주려 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낸 것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작가의 말’에 밝혔다.
강씨는 이어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한 민족적 분노는 당연한 것이지만 명성황후로 대표되는 수구당이 과연 올바른 노선을 밟았는가를 따져보는 것 역시 이와 별개로 필요한 일”일 뿐 아니라 “당대 개화당의 이념을 육화해놓은 우범선이라는 인물을 통해 개화당이 추구한 정치적 이념의 지형도와 그 한계를 짚어보는 것도 무익한 일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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