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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동인 잠옷 차림으로 숨졌다”

입력 : 2010-03-04 11:46:15 수정 : 2010-03-04 11: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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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 김광명 한양대 명예교수 ‘대산문화’ 봄호에 기고
◇김동인
 '약한자의 슬픔' ‘감자’ ‘배따라기’의 작가로 이광수와 함께 우리나라 소설 장르 개척자인 김동인(1900∼1951)이 전쟁 중 쓸쓸하게 사망한 상황이 그의 차남인 김광명 한양대 명예교수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됐다.

 김 교수는 최근 발간된 계간 ‘대산문화’ 봄호에 기고한 ‘나의 아버지 김동인을 말하다’라는 글을 통해 어린 시절 짧은 기간 함께 한 아버지와의 추억과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회고했다.

 기고문에 따르면 김동인은 1949년 ‘을지문덕’을 집필하던 도중 중풍으로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고, 6·25 전쟁이 시작될 무렵 오른쪽이 마비돼 자리에 눕게 됐다. 부인과 어린 자식들은 김동인을 업거나 부축해 피란 길에 나섰다가 균형을 못 잡는 아버지를 배에 태울 수 없다는 사공의 저지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김동인의 병세는 더욱 악화돼 급기야 혼수상태에 빠졌고, 이듬해 1월 부인은 흑석동 큰 누나네 집에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남편의 마지막 길을 지키기로 한다. 그러나 피란 행렬과 군인들의 통제로 흑석동으로 가려던 계획은 틀어지고  가족들은 온양의 피란민수용소에 머물다 8월에야 서울로 돌아왔다.

 그때 김동인은 집 근처 밭고랑에서 잠옷 차림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김 명예교수는 “어머니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셨다는 죄책감에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다”며 “그것은 결코 어머니의 잘못이 아니다. 자식들을 우선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놓고 몇 시간 후에 돌아와 임종을 지키려고 잠시 아버지 곁을 떠난 것이 계획대로 안 되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2008년 5월 97세로 별세한 부인 김경애씨는 평남 용강군 출신으로 평양에서 여고를 졸업하고 19세 되던 1930년 학교 은사인 소설가 전영택의 중매로 김동인과 결혼했다. 남편과 사별 후인 1995년, 자택을 팔아 마련한 기금 1억원을 동인문학상 운영위원회에 기탁하기도 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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