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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35> 국내1호 한국미술사 박사 조선미 성균관대 박물관장

입력 : 2009-10-05 22:04:58 수정 : 2009-10-05 22: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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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는 우리 문화이며 역사 그속에는 충효정신이 깃들어 있어
박물관·고궁에 전시된 작품들은 우리의 과거를 보는 훌륭한 길 안내
젊은이는 물론 어르신들도 박물관 탐방을
한가위 연휴가 끝났다. 사진이나 초상화를 모셔두고 차례를 지낸 가정도 있었을 것이다. 한두 세대 전만 하더라도 초상화는 부모 이전 세대의 모습을 전해주는 거의 유일한 시각적 매체였다.

국내 1호 한국미술사 박사인 조선미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장을 만났다. ‘그림으로 보는 공자의 일생-공자성적도(聖蹟圖) 전시회’가 열리는 성대 박물관에서였다. 대화는 공자 전시회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공자성적도전은 공자 탄생 2560주년을 기념해 9월 21일부터 12월 21일까지 3개월간 열리는 전시회다.

◇지금까지 초상화는 미술의 장르보다는 의례용품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초상화를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조선미 교수는 “한국의 초상화는 외모와 함께 사람의 심정과 내재적인 정신을 표현하는 멋을 간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종덕 기자
“내세보다 현실을 우선시하는 유교의 특징 때문에 공자의 모습이 담긴 그림은 지방 향교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요. 공자성적도는 공자의 행적과 가르침을 그림과 목판화에 일대기 형식으로 담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세 종류만 전해지는데, 이번에 한자리에 모았지요. 유교의 본산인 중국에서도 이런 전시회는 드물다고 합니다.”

각종 전시회로 주목받는 대학 박물관장으로서 자부심이 묻어난다. 성대 박물관은 이전에도 의미 있는 전시회를 열었다. 한국사 600년에 걸친 문인·학자 1136명의 친필 서예작품을 실물 그대로 영인, 번역한 ‘근묵’(槿墨)을 6월부터 9월까지 전시한 것.

조 관장은 이번 가을이 가기 전에 ‘한국의 초상화, 형과 영의 예술’(돌베개)을 내놓을 예정이다. ‘초상화 전문가’인 이 60대의 학자가 말하는 초상화는 무엇일까.

“초상화는 형(形)과 영(影)의 예술입니다. 형은 그려지는 대상 인물 자체이지만, 영이란 그려진 초상화입니다. 형과 영은 실체(實體)와 가상(假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상화에 대한 설명이 생각보다 어렵다. “실체는 무엇이고 가상은 어느 것이냐”고 물었다. 조 관장은 “고려 후기의 문인 이규보는 ‘형이 덧없는데 영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라며 형과 영에 대해 회의적인 인식을 보여줬지만, 형과 영이 그렇게 회의적인 대상이 아니다”고 말한다. 설명을 좀 따라가 보자. ‘형’으로 표현되는 사람의 외적 모습은 자주 변한다. 하지만, 형의 배후에는 불변의 본질이 자리하는데, 이 불변의 본질이 내적 요소인 정신과 마음이다. 이 내적 요소도 화면으로 끌어낼 수 있어 영으로 비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초상화는 사람의 형상을 재현할 뿐 아니라 정신까지 담는다. 인물의 외면은 물론 정신까지 전한다는 이야기다. 초상화론에서는 이를 ‘전신사조’(傳神寫照)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털끝 하나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다’는 명제를 신봉했다. 대상인물을 똑같이 담아낼 수 없으므로, 제사 때 초상화보다는 신주를 봉안하자는 취지에서 전해진 중국의 문장이었다. 중국의 인식과는 달리, 조선에서는 초상화를 그릴 때 인물을 세밀하게 그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우수 초상화를 많이 남긴 배경으로 작용한 셈이었다.

조 관장은 “초상화는 우리 문화며 역사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초상화에서는 왕이나 부모에게 보답하려는 사상과, 위대한 인물을 숭상하려는 정신을 끄집어낼 수 있다. 양반 가문일수록 초상화가 조상과 가문을 드러낸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가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덕성여대에서 강의하며 홍익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때였다. 초상화가 있던 양반 가문 후손들은 젊은 여성이 초상화를 봐야 할 이유를 이해 못했다. “우리 조상을 당신이 왜 보아야 하느냐”며 거절하기 일쑤였다. 설득을 위해 농한기에 수차례 농촌을 다시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말하는 농한기는 겨울을 의미한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여성이 미국 생활을 뒤로하고 한국 초상화를 공부한 과정도 궁금해진다. 김형오 국회의장,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하영선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등이 입학 동기다.

“제가 외교학과 유일의 여성이었어요. 어머니는 외교관이 되기를 원했지만, 저는 미국 유학생이던 언니를 따라 미술 재미에 빠졌지요.”

대학에 다니던 1960년대 말 미학과에서 청강하는 시간이 늘었다. 대학원 진학 후 미학을 전공하고, 홍익대에서 미술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는 과정에 우여곡절도 있었다. 사업하는 집안의 남편을 만나 당시 조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주례로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콜롬비아 대학원에 다니면서 서양 학문을 접했으나, 사업을 잇기를 원하는 남편과 함께 귀국하고 만다. 은사의 조언은 오늘 그를 만드는 일대 계기로 작용했다. “20세기 한국에서 일생 동안 공부하려면 동양적인 것을 하는 게 좋을 것이야.” 은사의 조언에 그간 흥미를 둬 온 한국 미술사를 전공하기로 했다. 그때부터는 불어와 독일어 등 서양 언어 대신 한문과 옛글을 읽어야 했다.

“인간 자신, 우리에 대한 관심에서 초상화를 공부했지요. 아쉬운 점은 흥선대원군 때 서원철폐령으로 초상화가 많이 없어진 거예요. 따라서 충실한 자료를 모아놓고 해석하는 게 제 세대의 사명이라고 여겼어요. 고문헌에 초상화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면 전국 각지를 샅샅이 찾아나섰지요.”

8년에 걸친 투자 끝에 그는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리고 한 세대 넘게 초상화 연구에 매진했다. 그 결실이 2년 전 나온 ‘초상화와 초상화론’(문예출판사)과 앞으로 나올 ‘한국의 초상화, 형과 영의 예술’(돌베개)이다.

그가 보기에 한국 초상화의 특징은 무엇일까. 한국 초상화의 원류는 고분 벽화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가장 빈약한 유형은 여인상으로 조선 중기 이후 거의 사라졌다. 뛰어난 초상화가들이 많았고, 매번 길일길시를 택할 만큼 초상화의 제작과정은 까다로웠다. 임금의 화상인 어진을 비롯해 공신(功臣)상, 사대부상, 여인상, 승상(승려의 초상) 등 초상화의 종류가 많았다.

조 관장의 설명을 뒷받침할 초상화는 많다.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의 당당함과 불행한 왕조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고종의 지친 모습은 확연히 구별된다. 같은 인물에게서도 시대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조선 부흥기를 이끈 영조의 모습이 그렇다. 무수리의 아들로 아직 왕세자가 못 된 젊은 연잉군과 군주가 된 영조의 모습은 확실히 다르다. 연잉군은 불안한 얼굴이 얼굴에 가득하지만, 영조의 얼굴에는 눈꼬리가 치켜 올라갈 정도로 자신의 뜻을 관철하곤 했던 군주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 관장은 늘 부족함을 느낀다. 일례로 철종의 어진은 군복을 입은 게 남아 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했는데 그는 사료를 찾아보고 나서야 의문을 풀었다.

“사도세자가 전복(군복)을 입었는데, 효심이 강했던 정조가 부친을 기리면서 전복을 입은 게 후대 왕에게 하나의 사례가 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초상화 전문가이지만, 1993년에 이어 두 번째로 성대 박물관장이 된 그는 올해 근묵, 공자성적도전을 잇달아 열며 대학의 박물관 문화를 바꾼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회자했지만, ‘보아서 안다’는 표현도 맞는 말입니다. 우리를 알고, 과거를 알기 위해서는 연구에 앞서 보아야 합니다.”

‘보아서 안다’는 말은 비애의 미를 강조한 일본인 미술 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즐겨 쓰던 표현이다. 조 관장은 대중의 적극적인 참여를 주문하면서 내처 말을 마무리했다.

“박물관과 고궁에 전시된 작품들은 우리의 과거를 보는 훌륭한 길을 안내하고, 그런 길을 통해서 우리를 알아가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나를 알아가는 작업은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젊은이들은 물론 어르신들에게도 박물관 탐방을 제안합니다.”

bali@segye.com

■조선미 관장은…

1947년 서울 출생.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장(예술학부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미학 전공. 홍익대 미학미술사 박사 학위 취득. 미술사학연구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을 지냄. 2008년 ‘월간미술’ 대상 수상. 전문가의 연구 영역에 있는 예술품들도 충분히 대중의 눈높이와 궤를 같이할 수 있다고 여긴다. 대중의 갈증과 전문가의 호응이 이뤄질 때, 대중의 문화 인식의 지평은 확장돼 우리 문화가 풍부해진다고 믿고 있다.

●역·저서

‘한국의 초상화, 형과 영의 예술’(가제·근간) ‘초상화와 초상화론’ ‘한국초상화연구’ ‘화가와 자화상’ ‘중국회화사’ ‘미술의 이해’ ‘동양의 미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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