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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나아가려 매일 죽는 연습' 다석 유영모를 다시 보다

입력 : 2009-05-05 18:28:51 수정 : 2009-05-05 18: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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加 리자이나大 오강남교수 ‘다석사상’ 특강
◇오강남 교수.
매일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며 관(棺)에 쓰이는 잣나무 널빤지 위에서 잠을 잤다. 마음의 욕심을 줄여 한 점으로 만들며, 날마다 죽고 새로 태어나서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해서였다. “종교가 귀족적이 되면 남을 짓밟는 종교가 된다. 세상에 예수처럼 내가 십자가를 지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남에게 십자가를 지우겠다는 놈만 가득 찼다”며 가난한 농부의 삶을 자처했다.

함석헌의 스승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씨알(민중)을 주체로 세우고 섬기는 민주사상을 제시한 그의 철학의 깊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다석 유영모(1890∼1981). 종교에 대한 다원주의적 이해가 요구되는 지구촌 시대에 그 사상적 선구자로 부각되며 신학·철학계를 중심으로 유영모 다시 읽기가 시도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철학대회에서 유영모와 함석헌의 사상이 세계철학계에 소개돼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다석 유영모의 신학과 철학세계를 조명하는 책들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지난 3일 재단법인 씨알이 서울 명동 전진상교육관 별관 강당에서 주최한 ‘세계 종교사에서 보는 다석 유영모’ 특강은 다석 사상의 세계종교사적 의미와 함께 삶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는 계기가 됐다. 이날 특강자로 나선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교수는 “다석은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등에 버금가는 한국이 낳은 특별한 종교사상가”라면서 “다석의 삶과 가르침을 세계 종교의 맥락에서 보면 구조적으로 그의 사상과 비견될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현대적 의미의 종교 다원주의의 선구자로 해석되는 다석 유영모.
오 교수는 “종교의 핵심은 죽음이다. 죽는 연습이 철학이요 죽음을 없이 하자는 것이 종교다. 죽음의 연습은 생명을 기르기 위해서다”라고 했던 다석 사상을, 예수의 말씀은 물론 유·불·선 사상과 합류된다고 말했다. “다석의 사상과 삶은 ‘이기적 자아’를 없애라고 가르치는 예수의 도마복음 35절, 불교의 무아(無我), 유교의 무사(無私) 사상, 장자의 ‘오상아(吾喪我·내가 나를 여읨)’ 체험과 통합니다. 지금 우리 삶을 소유하고 있는 이기적인 자아와 욕심, 정욕, 무지 등을 제어하지 않고서는 우리 속에 잠재된 값진 삶을 되찾아올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죽음의 연습으로서 단식(斷食)과 단색(斷色)을 실천했던 다석은 물질문명과 성적 자유를 좇는 지금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석은 금식을 통해 내 살과 피에 저장된 영양, 즉 육체를 먹고 정신이 산다고 여겼다. 오 교수는 나이가 든 다음엔 부인과 한 집에서 오누이처럼 살면서 도인의 삶을 실천했던 다석의 ‘해혼(解婚)’ 주장을 ‘홀로 됨’과 ‘홀로 섬’을 강조한 성경 구절과 비교했다.

“성경에는 모세도 광야에서 40년간 홀로 있었고, 예수도 광야에서 40일간 홀로 금식기도를 했으며 바울도 사막에서 2년간 홀로 지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간디도 어려서 결혼을 하고 자식도 낳았지만 40대 후반에 이르러 힌두교에서 강조하는 ‘브라마차랴’를 실천함으로써 부인과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는 금욕적 삶을 살았어요. 사상가들은 세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정신적 사막’을 만들어 수행하고자 했던 겁니다.”

다석의 기독교 재림 신앙 비판도 언급됐다. 다석은 ‘옳음과 그름’이라는 글에서 “예수가 하늘로 올라가신 뒤 신자들은 다시 오기를 바란다. 그것은 욕망이다. 그리운 님 예수를 따라서 올라가는 것이 옳지, 예수가 다시 와서 다 이뤄 줄 것으로 기대하고 그리워만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즉 그리스도의 일은 오늘의 나의 삶, 오늘의 역사와 사회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다석의 실천적 사상은 “아버지의 나라는 온 세상에 두루 퍼져 있어 사람들이 볼 수 없다”는 예수의 말씀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기독교 신앙을 동양철학 속에서 수용한 다석을 통해 유·불·도와 기독교가 회통(會通)했다며 강의를 마무리지었다. “다석은 ‘예수, 석가는 우리와 똑같다. 유교, 불교, 예수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정신을 ‘하나’로 고동(鼓動)시키는 것뿐이다. 이 고동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올려보낸다’고 했습니다. 다석 신학이야말로 21세기 종교의 갈 길이 아닌가 합니다.”

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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