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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또한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는다

입력 : 2008-11-21 17:46:46 수정 : 2008-11-21 17:4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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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작가 살와 바크르 장편소설‘황금마차는…’ 한국 독자들에게 아랍권 현대문학은 생소한 편이다. 주로 유럽과 영미권, 일본 중심의 문학을 편식해온 탓이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제3세계 문학을 접하고 싶어도 번역이 안 되면 현지어를 전공하지 않는 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최근 출간된 이집트 대표 여성작가 살와 바크르(Salwa Bakr·59·사진)의 장편소설 ‘황금마차는 하늘로 오르지 않는다’(김능우 옮김·아시아)가 각별히 반가운 이유다. 이 소설은 이슬람문화권, 그중에서도 이집트에서 여성이 살아가는 조건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소설 속 여성들은 완강한 가부장제에다 종교적 질곡까지 덧씌워진 환경에서 비참하게 살아가지만, 그들 또한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는 존재들이다.

무대는 자말 압둘 나세르 대통령 재임시절인 1950∼70년대 카이로 교외의 여성교도소. 화자는 알렉산드리아가 고향인 아지자라는 여성으로, 마흔이 채 되기 전에 의붓아버지 살해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그네는 감옥에 와서도 의붓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을 어루만지고 선물을 사주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맹인이었던 엄마가 죽고 난 뒤 다른 여자와 재혼하려고 하자 격분해서 응징했을 뿐이다. 독방에 갇혀 사는 그네는 날개 달린 백마들이 끄는 아름다운 황금마차에 태워 데려갈 여자들에 관해 곰곰이 궁리하면서 밤을 지새운다. 그네는 수감된 여성 중 일부는 날개 없는 천사들로, 하늘로 오르는 길을 잃고 헤매다가 이 암울하고 황량한 곳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아지자가 몽상 속에서 황금마차에 태워갈 수감자를 고르는 과정을 통해 기구한 사연을 지닌 여성들의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천일야화’처럼 이어진다.

입을 꾹 닫아버려 너무나 조용한 샤피카 알카트울라. 이 작은 소녀는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모든 사람들과 완전히 단절되는 길을 선택했다. 소녀의 죄목은 구걸죄. 과부가 된 언니가 어린 자식들과 자신을 포함한 동생들을 건사하며 친정에서 살아가는데, ‘불행하게도’ 그 언니는 너무 아름다웠다. 수많은 남자들이 청혼을 해도 외면하다가 어쩌다 종교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몰래 만난다. 이 사실을 밀고 받은 아버지는 남동생을 시켜 그네를 사막에 버리게 한 뒤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한다. 엄마처럼 따르던 언니의 어이없는 죽음을 알게 된 어린 샤피카는 충격 속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길거리를 방황하다 감옥까지 왔다.

흘러넘치는 모성애를 지닌 움무 알카이르는 교도소 안에서 만나는 모든 여자들을 자신의 딸로 생각한다. 그네는 마약을 거래한 아들의 죄를 스스로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왔다. 하층민 여자로 의사까지 되었던 압둘 하크는 끝내 상층부에 편입되지 못한 채 감옥에 들어와 손톱만 물어뜯는다. 그런가 하면 중산층인 마담 자이납은 비행기사고로 죽은 남편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아이들의 비열한 삼촌을 권총으로 살해했다. 이들을 포함한 15명의 이야기는 아랍사회의 특수성에다 보편적인 여성차별의 문제까지 겹친 환경의 슬픔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최근 아랍문학포럼 참석차 한국에도 다녀간 살와 바크르(59)는 카이로에서 철도회사 직원의 유복녀로 태어나 대학에서 경영학을, 대학원에서는 역사와 문학비평을 공부했다. 카이로에서 식량성 배급 검사관으로 근무하다가 레바논과 키프로스로 이주해 살면서 영화비평가로도 일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그는 “나에게 글쓰기는 단지 억눌린 감정을 발산하기 위한 수단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존 그 자체”라며 “그것은 나를 정신착란이나 자살로부터 보호했던 진정한 자극”이라고 말한다. 영어로도 번역돼 여러 나라에서 출간된 ‘황금마차…’는 바크르가 대학시절 노동운동에 참여했다가 투옥되었던 교도소 경험을 모태로 삼았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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