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 이란 야즈드

관련이슈 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

입력 : 2008-05-09 09:44:03 수정 : 2008-05-09 09:44:0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진흙으로 만들어진 고대도시
◇아즈드는 2000년 전에 진흙으로 만들어진 고대도시다. 뒤쪽으로 자메 모스크가 보인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하이 서울 페스티벌’을 구경하러 갔는데, 함께 있던 남자 후배가 말했다. “역시, 여름이 좋아요. 날씨가 더워지니 여성분들 치마도 점점 짧아지고 말이죠, 눈이 즐거워요.”

필자는 더운 날씨와 미니스커트를 떠올리면 항상 이란이라는 나라가 생각난다.

이란으로 들어가던 날 필자는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기차가 터키와 이란의 국경을 통과하자마자 같은 칸의 여성 여행자 부우가 말했다. “머리에 스카프를 써. 여기서부터는 이란이니까.”

◇실내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소주디와 미나.
앞으로는 머리를 보여서도 안 되고, 몸매가 드러나거나 맨살이 보이는 짧은 옷을 입어서도 안 된다. 사진에서만 보던 차도르를 입은 여성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됐다. 이란을 여행하는 동안 필자 역시 그런 복장으로 다녀보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잠시뿐, 이란에 도착한 지 정확히 이틀 만에 필자는 짜증과 분노로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스카프는 어찌나 자주 흘러 내리는지, 머리를 감아도 말리지도 못하고 꽁꽁 싸매야 했다. 호텔 앞의 빵집에 가는 데도 맨 발등이 보이면 안 된다고 해서 양말을 신고 나가야 했다. 도착한 첫날, 핑크색 옷을 입고 나갔다가 눈총을 받은 뒤론 검은색 긴바지에 긴팔 재킷을 입었고, 엉덩이 라인이 보이면 안 된다고 해서 그 위에 치마까지 덧입었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말이다.

호텔 내에서는 그럼 괜찮은가? 그것도 아니었다. 여자들이 묵는 방이 더워서 문을 열어두면 남자들이 호기심에 얼마나 들여다보는지, 동물원 원숭이가 되기 싫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문을 닫고 있어야 했다. 쌓였던 짜증이 폭발한 것은 인도 비자 때문에 지하철을 타러 갈 때였다. 누군가 엉덩이를 손가락으로 쿡 찌르고 간 것이다. “이봐, 너 거기 서!” 이란 남자는 자기는 절대로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밀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경찰서로 끌고 갔다. 필자가 가련하게 울듯한 모습을 보이자 경찰서 직원들은 동정심을 보였다. 치한 남자의 뺨과 머리를 힘차게 때려준 것이다.

인도 비자를 기다리는 보름 동안 이란의 몇몇 아름다운 도시를 여행하게 되었다. 야즈드에 있는 천년 이상이나 타오르는 조로아스터교의 불을 보러 갔다. 문을 닫았기에 바로 앞의 인터넷 카페로 들어갔다. 주인 남자와 조금 이야기를 나눴는데 잠시 뒤에 자기 부인이 도시락을 싸올 예정인데 점심을 함께 먹겠느냐고 묻는다. 그때는 라마단 기간이라 식당이나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던 터라 흔쾌히 수락했다.
◇조로아스터교의 불의 신전에는 천년 이상 타오르는 불이 모셔져 있다.

조금 뒤에 문이 열리고 아름다운 여인이 들어왔다. 함께 식사를 하며 소주디와 미나의 러브 스토리를 들었는데 정말 낭만적이다. 나이 차이가 10살이나 나는데다 부인이 너무 아름다워 결혼할 때 주변사람들이 자기를 도둑놈이라고 했단다. 한국과 이런 점에선 별반 차이가 없다. 그저 밝은 모습이 좋아 동생처럼 만났는데 결혼까지 하게 되어 너무 행복하단다. 서로 사랑하는 모습에 필자의 기분도 좋아졌다.

소주디가 꺼내준 앨범에서 결혼 사진과 옛날 사진을 보고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앗, 미니스커트다!” 이란에서 미니스커트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옛날부터 꽁꽁 싸맨 옷만 입는 줄 알았는데 이런 시절도 있었구나! 
◇윈드캡처 타워. 이곳으로 들어온 바람으로 건물안의 온도를 낮춘다.

이란은 1930년대부터 궁중 여성들부터 히잡을 벗기 시작한 서구화 개혁이 있었고 당시엔 그 어떤 이슬람 국가보다 개방적인 나라였다고 한다. 그러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미니스커트의 시대는 끝이 났다.

미나에게 물었다. “히잡을 쓰는 게 좋아요?” 이집트의 한 여성으로부터는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밥을 먹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달랐다. “싫어요. 아마 국민의 절반 이상이 싫어할걸요? 제가 다니는 대학교의 여학생들은 대부분 싫어해요.” 
◇침묵의 탑. 조로아스터교의 조장(鳥葬)이 행해지던 곳이다.

과거에는 히잡을 쓰는 것이 시각적으로 자극받는 남성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조치로 정당성을 인정받았다지만, 요즘 꽁꽁 싸매서 여성을 보호한다는 건 전근대적인 발상이다. 필자가 테헤란에서 만난 치한, 그리고 수많은 여성 여행자와 심지어 남성 여행자가 만난 치한의 이야기는 이란의 묵은 관습과 사회적 억압이 얼마나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나를 잘 말해주고 있다.

여름이 가까워지는 요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검은색으로 뒤덮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걷던 이란이 생각난다. 미니스커트를 입을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

여행작가



#야즈드(Yazd)

진흙으로 지어진 고대 건물과 뜨거운 날씨를 견디기 위한 자연 에어컨, 윈드 캡처 타워(Wind Capture Tower)로 유명한 곳이다. 야즈드는 기원전 660년쯤에 탄생한 조로아스터교 (Zoroastrianism)의 본산지이기도 하다. 시내에는 천년 이상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불을 모신 불의 신전이 있다. 근교에는 조로아스터교에서 조장(鳥葬·사체 처리를 새에게 맡기는 장례법) 의식을 치르던 침묵의 탑(Dakhme-ye Zartoshtiyan)이 있다. 탑 아래 쪽에는 조로아스터교 교인들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여행정보

이란항공이 테헤란까지 직항을 운행하며, 대한항공과 에미레이트항공은 두바이를 경유한다. 한국에서 이란 비자를 받으려면 초청장이 필요한데 이란항공을 이용하면 항공사에서 초청장을 대신 발급해 준다. 비자 발급비는 단수 4만5000원, 복수 7만5000원으로 7일이 소요된다. 테헤란에서 야즈드까지는 버스와 기차로 갈 수 있는데, 8시간 정도 걸린다. 외국 여행자도 여성은 반드시 히잡을 착용해야 한다. 여성은 손과 얼굴을 제외하고는 맨살을 드러낼 수 없다. 옷차림에 주의하지 않으면 종교 경찰에 끌려간다. 남자는 반바지나 민소매만 입지 않으면 된다. 신용카드와 현금카드 사용이 불가능하므로 현금으로 환전해야 한다. 화폐 단위는 리알(Rial, 1000리알은 약 110원). 저렴한 호텔 싱글룸은 5∼10달러, 서민식당의 음식값은 2∼5달러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