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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산책] 이토록 뜨거운 순간

입력 : 2007-12-24 21:04:08 수정 : 2007-12-24 21: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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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는 선생님을 위해 “캡틴, 오 마이 캡틴”을 외치며 책상 위에 올라서던 교복 소년. 기차에서 만난 파리지앵과 문학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 나누던 청년. ‘죽은 시인의 사회’, ‘비포 선라이즈’의 이선 호크. 어느새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그가 자기 인생의 가장 뜨거웠던 순간들을 꺼내어 놓는다.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영화화한 ‘이토록 뜨거운 순간’이 바로 그것.

미국에서 가장 더운 텍사스주. 여름엔 길에 나서기 힘들 정도로 뜨거운 폭염이 쏟아지는 곳. 텍사스 출신의 스무 살 윌리엄은 가슴속 불덩이를 간직한 채 배우를 꿈꾸며 뉴욕에 온다. 그리고 젊은 날, 삶의 가장 뜨거웠던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될 그녀를 만난다.

배우 지망생 윌리엄과 가수 지망생 세라. 수요일에 만나 토요일에 같이 살게 되는 이 커플은 불확실한 꿈과 힘겨운 하루하루를 함께 나누며 서로에게 빠져든다. “우린 언제쯤 서로가 꼴보기 싫어질까?” 여느 시작하는 연인들의 닭살 멘트와 조금도 다름없는 그들만의 대화. 다가올 이별은 짐작조차 안 되고, 둘만의 시간은 영원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너무 빨리 달궈진 시간들은 준비 못한 결별을 가져오고, 스무 살의 윌리엄에겐 감당하기 버겁기만 하다. 뜨겁게 끓던 쇳물은 한번 식기 시작하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기 마련. 냉정하게 굳어버린 그녀를 받아들이기 힘든 윌리엄은 자꾸만 상처받고, 자꾸만 돌아보고, 자꾸만 아프게 된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작곡가 제시 해리스의 OST다. 윌리 넬슨, 파이스트, 브라이트 아이즈, 에밀루 해리스, 노라 존스 등의 목소리를 한꺼번에 듣는다니. 한 명의 작곡가가 OST 전체를 맡아서인지 다른 듯 닮은 노래들이 영화 속에 잘 스며 있다는 느낌이다.

비주얼은 대체로 거칠고 덜 익은 맛이 나지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스무 살은 숙련된 무언가와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다. 20은 그러기엔 너무 풋풋한 숫자다. 깨진 사랑에 아픈 스무 살의 감성을 담아내기엔 신출내기 감독 이선 호크가 오히려 적임자였다는 생각마저 든다. 꾸밈 없고 솔직한, 다듬어지지 않은 캐릭터들. 사랑과 이별을 통해 한 뼘 더 크는 스무 살의 연애담이랄까.

툭툭 던지는 대사들은 청량감이 느껴지고, 공들인 음악들은 가슴을 싸하게도 쿵쿵 뛰게도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스무 살만큼의 영화. 이선 호크가 스무 살 아들을 둔 아버지로 나오다니. 그 대목은 좀 심했다.

김정아(이노션·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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