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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나의 필름포커스]강을 건너는 사람들

입력 : 2007-11-29 19:14:51 수정 : 2007-11-29 19: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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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이 영화를 보자마자 떠오른 것은 정현종의 두 문장으로 된 아포리즘이 빛나는 시 구절이었다. 일본 속의 한국이란 섬,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흐르는 마음속의 강을 건너 서로 섬을 이어가는 7년간의 성실한 행로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배경은 도쿄 인근 중공업 항구도시 가와사키. 항공엔진을 단 날렵한 가와사키 오토바이 생산지로 유명한 이곳은 일제강점기 군수공장이 집결된 곳이었고, 조선인 강제징용의 생생한 현장이기도 했다. 이곳은 또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한일 간에 흐르는 강을 보여주는 상징적 지점이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집단적, 역사적 편견이 흐르는 도도한 강물 속에 익사해버리거나 혹은 저 멀리 강 건너편을 그저 바라만 보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편견의 강물을 건너 소통과 평화가 흐르는 강물을 자신의 섬으로부터 솟아나게 하는 네 사람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작품은 휴먼 다큐멘터리로 분류되지만, 사람들 속의 깊은 섬에 고요히 정박해 내면풍경까지도 이미지화하는 데 7년간의 노고를 받친 김덕철 감독의 인간승리이기도 하다.
한일 간의 강을 넘는 네 사람의 삶의 편린이 교차되는 복합직조식 구성은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일상적인 자연스러운 삶의 시공간으로 변환시킨다. 재일한국인 송부자씨가 살아온 삶은 ‘조센징’에 대한 편견의 폐해와 극복과정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 때문에 자살기도를 비롯해 일본인이 되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으면서 ‘고려박물관’ 건립운동을 벌여나가는 그녀의 독특한 일인극 무대는 개인과 역사의 매듭을 살풀이하듯이 풀어낸다. (영화 제작 도중 세상을 떠난) 김경석씨는 그 자체가 투쟁의 역사이다. 가와사키 제철소에서 강제노역을 했던 그는 일본회사의 책임 규명을 요구하면서 평생에 걸친 법정 투쟁을 벌인다. 어느 자리에서나 꿋꿋하게 과거를 증언하며 유머감각을 보이기까지 하는 노익장의 모습은 부당함에 굴복하지 않는 고달픈 투쟁의 미학을 보여준다.
전쟁을 겪으며 허무감을 절감한 세키오 히로오 목사는 평화가 강처럼 흐르는 세상을 위해, 사랑스러운 나라 일본을 만들기 위해 교회 강단에서, 거리 바자에서 일상의 매순간 한일 간에 흐르는 강을 넘는 인권평화운동을 벌인다. 2000년 자매도시 부천에서 경험한 한국 친구들과의 우정을 기억하는 일본의 젊은 여성 다카키 구미코는 한국 학생들을 초청해 조선학교 학생들과 만남의 장을 이끌어낸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아 아주 짧은 영어로 서로 만난 게 ‘럭키’라고 거듭 말하며 보디 랭귀지로 한일 우정 관계를 개척해나가는 그녀의 노력과 실천은 경이롭다. 한 사람의 꿈이 강을 건너 일상의 정치학으로 꽃피워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화면 밖 소리나 인터뷰어의 개입 없이 철저하게 네 사람의 삶을 객관적 거리를 두고 찍어 나가는 절제되고 담백한 시선, 특히 오랜 세월 촬영감독을 지낸 김덕철의 영상은 투명하고 명확한 이미지들을 통해 세상과 스크린의 담을 헐어내면서 우리에게 강을 건너는 삶의 묘미를 중계해준다.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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