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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화 "내가 진지해질수록 진실된 웃음이…"

입력 : 2007-11-29 11:19:00 수정 : 2015-11-16 1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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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⑤개그맨서 뮤지컬배우 변신 정성화
◇그는 배우로서 자신을 ‘못생겼지만 만날수록 매력있는 소개팅녀’에 비유했다. “지금도 내 뮤지컬을 안 본 사람은 쟤가 무슨 배우를 하나, 그러겠지만 앞으로 정성화가 나오는 뮤지컬이라면 내 얼굴이 아닌 내 커리어를 보고 믿음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정성화(32)를 기억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90년대 ‘틴틴 파이브’로 활약했던 개그맨으로 떠올리거나, 아니면 최근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돈키호테)’에서 조승우와 더블캐스팅돼 조승우보다 더 호평받은 뮤지컬 유망주로 기억하는 방식이다.

뮤지컬 ‘아이러브유’(2004)에서 ‘컨페션’(2006) ‘올슉업’(2007) ‘맨 오브 라만차’(2007)를 거치며 개그맨 딱지를 벗고 뮤지컬배우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굳힌 정성화는 내년 1월 ‘라디오스타’로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다. 개그맨 출신 배우가 오를 수 있는 연기의 최고봉을 감초 조연에서 묵직한 주연급으로 상승시킨 그는 최근 뮤지컬 관계자들 사이에 가장 작업해보고 싶은 배우로 손꼽힌다.

“사람들을 웃기지 않으면 죄를 짓는 거라 생각했다”는 그의 자리는 일찌감치 무대 위였다. 인천 대공고등학교 시절 학교축제 사회를 도맡던 그를 위해 교장선생님은 전례가 없는 예능장학금을 만들어 연기학원(MTM)에 보내줬다. “너 같은 애는 연예인으로 대성해야 된다”는 게 이유였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하던 해 가입한 개그동아리 공연에서도 그를 눈여겨보는 사람이 있었다. 우연히 그날 공연을 참관한 개그맨 신동엽이 “너, 나 좀 보자”고 따로 불렀고 ‘기쁜우리 토요일’이란 프로그램이 그의 TV 데뷔작이 됐다. 이듬해 SBS 3기 개그맨 공채합격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1995년까지 틴틴파이브로 활약했던 그를 연기의 길로 입문시킨 것은 SBS 드라마 ‘카이스트’. 예능PD 출신 주병대 감독의 안목이었다. 다음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제작자 설도윤씨가 그를 불러들였다. ‘아이러브유’ 출연은 그렇게 한 뮤지컬배우의 재목을 탄생시킨 계기가 됐다.

방송과 무대의 영향력은 체감온도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는 ‘아이러브유’로 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적은 수입 때문에 뮤지컬배우로 계속 살아야 할지 고민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나가는 뮤지컬을 20만 관객이 봤다고 쳐도 TV 시청률로 치면 1% 가 안 되는 수치예요. 방송을 하면 돈도 더 벌 수 있겠죠. 하지만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기보다 내가 행복하고 남도 행복한 일이 뮤지컬이에요. 극 속에서 녹아들며 폭넓은 웃음과 감동을 주는 코미디를 하고 싶거든요.”

◇‘맨 오브 라만차’에서 열연중인 정성화.
90년대 중반만 해도 세미 드라마 형식이었던 개그계가 스탠딩 코미디 형식으로 변화하면서 그의 직업은 ‘개그맨’에서 ‘희극배우’로 바뀌었다. 그에겐 눈물도 관객에게 행복을 주는 방편이다. “너무 슬픈 멜로드라마를 보고 나면 관객이 슬플까요? 좋은 작품을 봤기 때문에 두고두고 행복할 거라고 생각해요.”

타고난 끼와 감각. 그러나 거저 얻어진 것은 없다. 공연을 할 때마다 그는 주소지가 바뀐다. 부평의 집에 오가는 시간도 아까워 매번 공연장 근처로 숙소를 옮기기 때문이다. ‘맨 오브 라만차’ 땐 LG아트센터 근처에 장기 월세방을 임대했고 ‘컨페션’ 때는 충무아트홀 인근 여관에 묵었다.

극중 배역 몰입이 안 될 땐 이곳에서 작품 속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서 소설을 써본다. 대본에는 안 나와 있는 배경과 사건을 넣어 서브 텍스트까지 쓰면 훨씬 쉬워진다. 독서와 글쓰기는 배우수업의 기본. “대본을 보면서 무대 위의 자기모습을 상상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란다.

개그맨 출신이라 연기할 때 유리한 점도 있다. 그는 “개그맨은 반응에 민감한 사람들이라 촉수가 많은 점”을 장점이자 단점으로 꼽았다. “관객 2000명이 있으면 2000개의 촉수가 뻗어나오죠. 그만큼 상황판단과 순발력이 뛰어납니다. 대신 단 한 명이라도 안 웃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이 급해져요. 그 순간부턴 어떻게든 그를 웃기고 봐야 하죠. 하지만 무대 위에서 정성화의 개인기가 보이면 작품으로선 실패예요. 웃음의 타이밍은 진실에서 우러나오죠. 제가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극은 더 재밌어집니다.”

배역선택의 기준은 ‘도전’이다. ‘맨 오브 라만차’ 때 시종인 산초 역 제의가 왔지만 굳이 오디션을 자청해 돈키호테를 따낸 일은 잘 알려져 있다. 동명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라디오스타’에서도 한물 간 스타 최곤보다 인간적인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매니저 박민수에 도전한다. 영화에서는 안성기가 맡았던 배역이다. “인간적이면서도 직업정신과 위신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이죠. 이 때문에 가족은 내팽개져 있는데 우정은 제대로 과시하는 캐릭터예요. 7대 3 가르마의 머리, 거기에다 단벌 양복에 흰 양말을 갖춰입는 스타일을 만들어볼까 구상 중입니다. 박민수는 외양에서부터 바로 저 모습 때문에 잘 안 되고 있다는 느낌을 줘야 하거든요.”

그가 매일 무대에서 깨닫는 것은 배우의 위대함이다. “무대배우가 위대한 것은 매일 똑같은 자리에서 같은 연기를 같은 컨디션과 기분으로 연기한다는 거죠. 영화는 한 번 ‘잘해 버리면’ 되고, 못하면 ‘다시’ 찍으면 되잖아요. 그러나 무대는 오늘 잘해도 내일 또 잘해야 돼요.”

글 김은진, 사진 김창길 기자 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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