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도 가고 싶은 미술관 목표
“제대로 된 시스템 구축 급선무” 지난해 공개모집을 통해 ‘광주 여자’가 대구미술관 신임 관장에 내정되자 사람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보수 대구’라는 점에서 누구도 생각 못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이 김선희(54) 관장이다.
전남대학교 미술교육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관, 일본 모리미술관 선임 큐레이터, 중국 상하이 젠타이 그룹 히말라야 센터 예술감독을 지낸 그를 대구시가 인정한 것이다. 학벌 지연보다는 공립미술관의 학예연구관으로서 풍부한 실무경험과 국제적인 전문성을 높게 평가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결정이었다. 지난주 대구미술관 구사마 야오이 전 개막식에 참석한 김범일 대구시장은 “서울지역 미술관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김선희 관장”이라고 조크를 던질 정도로 신뢰감을 표시했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관료주의의 잔재인지, 시립미술관 관장이란 자리는 실질적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하며 일하는 자리라기보다는 ‘권력’을 상징하거나 행사하는 자리라는 인식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국공립미술관 관장직은 알게 모르게 정치적으로 연관됐던 것이고요. 그런데 ‘보수 대구’의 선택은 정말 뜻밖이어서, 저 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보수 대구’가 아니라 ‘진보 대구’를 경험한 것이지요. 이것이 대구의 힘이구나 싶었죠. 어렵게 획기적으로 저를 선택해주신 데에 대해 제가 답을 해야 합니다.”
요즘 그에게 사적인 시간은 잠자고 먹는 것 빼고는 없을 정도다. 대구와의 갑작스러운 인연으로 ‘광주 여자’는 지금 ‘신생 대구미술관’을 ‘굴지의 대구미술관’으로 만들어보겠다고 밤낮으로 분주하다.
“사실 세계에서 유명한 미술관 중에는 지방에 있는 미술관이 꽤 많이 있습니다. 일본만 해도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이나 나오시마 베네쎄미술관이 그렇습니다. 가나자와와 나오시마는 대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촌입니다. 더욱이 그곳은 교통편도 좋지 않아서 오가기에도 쉽지 않지만 연일 국내외 관람객으로 붐빕니다. 지방시대에 주변 환경이 수려한 대구미술관도 대구 관광 1번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지역성을 극복하고 멀어도 가 보고 싶은 미술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좋은 전시는 당연하고, 그 밖에도 뭔가 흥밋거리들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거기에 가면 다른 데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 그것이 주변의 좋은 경치 또는 멋진 레스토랑에 맛난 음식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지역의 특산물도 한몫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지역에 맞춘 전략이 필요하다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 일본의 군마현에 있는 하라미술관에서는 바로 옆에 목장이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전시를 본 다음에 맛있는 미술관 아이스크림을 먹고 온천을 갈 수 있었던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미술관이나 그 주변에서 전시 이상의 재미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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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미술의 가장 뜨거운 현장인 중국과 일본을 누비며 국제적 감각을 키운 김선희 대구미술관 관장. 그는 “한국 미술이 중국과 일본에 비해 저평가되어 있다는 건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잠재력이 있다는 얘기”라며 낙관했다. |
“일본에서는 무엇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직 시스템을 배웠습니다. 직원들끼리 함께 회의를 자주 하거나 전 직원이 정보·이메일을 공유하는 식이기 때문에 일하기가 좋았고, 힘들게 일하는 와중에도 가끔 사무실에서 깜짝 파티를 연다든가 해서 팀워크를 다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요. 함께 일하는 조직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중국은 시스템이 거의 부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의 일을 내일 알 수 없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런 여건에서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제가 더 앞장서서 일본에서 배운 시스템을 조금씩이라도 도입하면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 경험들은 일면식도 없는 낯선 대구에서 제가 일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세계 미술계에서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을 두루 경험했다는 점에서 그의 인맥과 노하우는 한국 미술의 자산이 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에 서 있는 구사마 야요이의 대규모 전시가 성사된 것도 그의 역량이기에 가능했다. 그는 한국 미술은 중국과 일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일본 미술관들은 지방·수도권에 관계없이 국내 순회 전시를 많이 합니다. 애써 만든 좋은 전시품을 전국에 순회를 시키고, 무엇보다 지방의 미술관들까지도 국제 교류에 열성이어서 국제 흐름이나 정보에 강합니다. 반면 중국은 미술관이 앞장서기보다는 그동안 작가 개인이나 갤러리들이 많은 역할을 하면서 국제사회로 진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특히 작가들이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지원하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어느 작가 작업실을 방문한다고 하면 동네 작가들이 다 모여 있고, 다른 작가를 소개해주는 데 열성이지요. 무엇보다 국제 흐름을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김 관장의 머릿속엔 늘 한국 미술이 위치하고 있다. 국제 무대에 보조를 맞추며 나아가는 꾸준하고 진중한 노력과 자세, 작가들 사이의 강한 연대감 등을 그는 주문했다. 대구 작가들을 해외 레지던트 프로그램에 보내고, 해외 큐레이터들을 초청해서 대구 작가들 스튜디오를 방문케 하는 등 대구 미술의 국제 교류를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미술은 그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국제적으로 훨씬 저평가받고 있습니다.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소수에 불과합니다. 지구촌사회에서 국제 교류를 하고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드라마·영화·가요·스포츠 등까지 넓게 퍼져 있는 한류가 미술에도 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막연하게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이를 위해 토질을 개선하고 도화선이 될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야 합니다.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열린 마음, 국제사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어느 사회든 기존의 전통과 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유의미한 것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고나 틀을 깨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강하고 뜨거운 민족성을 가진 나라로서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 미술계도 그동안 많은 발전을 했지만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나 자신부터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유연하면서도 현명하게, 진정성 있게 대처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두 함께 노력해야죠.”
일본과 중국에서 보낸 10여 년의 세월과 이에 앞선 5년간의 미국 생활은 그에게 오히려 한국을 제대로 알게 해 준 시기였다.
“제가 여러 나라를 경험하고 나서야 한국 사회가 유독 경쟁적인 분위기도 강하고, 그 때문인지 한국인들이 정치적인 성향도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것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나온 삶이 어떻게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고 말한다. 실과 득을 따지지 않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이끌린 삶이었다. 마치 떨어진 나뭇잎이 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듯이, 이제야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 그도 사람인지라 좀더 차분하고 여유 있게 살고 싶은 것이 꿈이다. 하지만 그의 직성이 그리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도 그는 작은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는 정원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어리석을 만큼 자신의 신념을 따라 열심히 일하는 인간으로 살아 갈 것이라는 것을.
편완식 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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