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예술·디자인 경계 허물어
새로운 가능성 모색하고 표현

“장르를 넘나드는 유연한 작업의 근간은 ‘아트’입니다. 아트가 제겐 만다라인 셈이지요.”
그는 세상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그것들을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거쳐 변화무쌍한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평면상의 이미지는 입체와 공간 설치로 확장된다. 예술과 일상, 순수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만다라는 산스크리트어로 둥근 원을 의미하며, 진리와 우주를 형상화한 그림입니다. 깨달음의 마음 상태를 형상화한 것이지요. 하지만 불상이 진짜 부처님이 아니듯이 만다라가 우주법계 그 자체는 아닙니다. 우리가 시끄러운 곳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듯이, 부처님을 형상화한 불상과 깨달음의 세계를 형상화한 만다라 그림들이 있는 사원에서 수행하면 더 효과적이어서 제겐 ‘아트’라는 만다라가 있는 것입니다.”
그는 파리의 모스크 사원 등 종교적인 공간에서 얻은 영감(에너지, 기, 정신, 심리상태 등)을 작품화하기도 했다. 만다라 이미지 같은 그의 작업은 어찌 보면 이슬람의 문양처럼 보이기도 하고 교회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문양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특정 종교의 상징은 아니다. ‘아트’라는 만다라를 찾아가는 그의 작업 여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오감(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상징하는 자신의 신체 부위(눈, 귀, 코, 입, 혀, 항문)를 사진으로 촬영하여 꽃과 만다라의 형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멀리서 보았을 땐 만다라나 이슬람문양 같은 추상적 패턴의 형상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눈과 귀 등 아주 사실적인 사진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인생은 유한하니 현재의 모든 순간과 상황을 오감을 총동원하여 최대한 느껴보고 향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송가 중 ‘현재를 즐겨라,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는 아니라고 말한다.
“상품화된 가치로만 평가되는 세상에 대한 저의 ‘작은 반격’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단순히 현재를 즐기라는 의미는 아니지요.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일상의 풍경 속에서 삶의 진정한 가치들을 찾아보자는 제언입니다.”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작업의 사회적 기능을 엿보게 해 준다. 인생의 덧없음에 기인한 충동적이고 허무주의적인 발언이 아니라 오히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지금 현재 살아가는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다이아몬드 등의 보석 이미지를 만다라와 스테인드글라스의 형상으로 표현한 작품이 이를 말해준다. 소유욕망·부귀영화·영원성 등을 상징하는 화려한 보석 이미지들엔, 그것 역시 영원할 수 없다는 의미의 바니타스(해골) 형상이 숨겨져 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마지막 장면에 사이보그가 인간에게 던지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시간 속의 그 모든 순간들은 빗속의 눈물처럼 사라져 간다’는 대사다. 그는 로마의 트레비 분수를 소재로 한 작품에 이 글귀를 편집해 넣었다. 작품은 한 컷으로 촬영한 사진이 아니라, 위치와 시간의 이동을 거치며 촬영한 수많은 사진을 포토숍에서 조합하여 만들어낸 이미지다. 끝없이 생성되고 흘러가며 순환되는 분수의 ‘물’과 시간의 흐름 속에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트레비’라는 이미지가 묘하게 다가온다.
그는 대학원 시절부터 편집디자인 일을 하면서 예술과 삶에 대한 고민을 해 왔다. 시각디자인, 패션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를 넘나들면서도 사진 작업을 중심에 위치시켰다.
“패턴의 반복과 확산이라는 조형작업으로 평면에서부터 입체, 공간설치, 공공미술에 이르기까지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순수미술과 생활디자인의 경계에서 긴장감을 유지할 때 좋은 작품과 디자인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의 작업의 연원은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만화경이다.
“작은 구멍을 처음 들여다보았을 때의 신비한 시각적 충격은 저에게 세상을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관계의 구조로 관찰하게끔 하는 습관이 생기게 했습니다. 원통을 빙글빙글 돌리면, 반사에 의해 다양한 무늬가 생기면서 수많은 상과 갖가지 모양이 나타났었는데, 그것은 마치 원통 속에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듯이 저를 끊임없는 상상의 세계 속으로 이끌었지요.”
그의 작품은 패턴 이미지들이 매스게임하듯이 펼쳐져 있다. 멀리서 보면 화려한 컬러의 추상적 무늬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하게 되어 웃음 짓게 만든다. 개별 작업마다 사진을 찍었을 당시의 상황과 감정이 반영된 무늬로써 패턴화한 것이다.
“일상 이미지들이 미술의 방식으로 흡수되어 다시 일상생활 속으로 스며들게 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그래야 관람객들이 작품 앞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는 공적인 공간의 디자인이나 설치작업에는 그 공간을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이미지를 추출하고 공간을 연출한다.
“저는 제 나름의 ‘감성언어 이미지 설문조사’를 통해 시민(관람객)들의 사적인 취향을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권위적 성격의 딱딱하고 무거운 공공미술 대신에 시민들과 적극적인 교감을 할 수 있는 부드러운 공공미술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는 인문학과 예술의 접점도 모색하고 있다. 융합의 시대를 거스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장르와 영역을 횡단하는 현대 미술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그는 이 시대에 있어 예술작품의 존재방식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있다.
“하나의 무늬가 수없이 복제될 수 있는 디지털시대엔 공간과 상황에 맞춰 외견을 달리하는 현대 미술의 가변적 존재방식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고정된 예술의 형태를 뛰어넘어 유연한 예술 형태로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요즘 그는 바쁘다. 패션계는 물론 디자인 업계에서도 그를 부르고 있다. 미술계에서도 디지털화된 그의 사진 패턴에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인터뷰 중에도 전시장으로 컬렉터들이 찾아와 말을 잇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지금 이 순간을 작가로서 철저히 즐기는 것이 제 삶의 만다라입니다. 치열한 작가정신의 에너지이기도 하고요.”
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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