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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 아니라 우리 것”… 문화재, 기증으로 빛난다

입력 : 2013-05-23 00:25:15 수정 : 2013-05-23 00: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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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미소·대보적경·청동투구 등
오랜 세월 수집한 국보급 고가 유물
대가 없이 내놓은 사례 전설처럼 회자
국립중앙박물관 2만8000점이 ‘기증’
국립부여박물관에 가면 ‘분청사기 연꽃 물고기무늬병’을 만날 수 있다. 연꽃 사이를 헤엄치는 물고기를 새긴 사기로 조선시대 분청사기의 대범함과 유쾌함이 두드러진 명품이다. 다음달 30일까지 열리는 ‘기증으로 빛난 문화재 사랑’전에 전시돼 관람객의 눈을 호강시켜준다. ‘서산 마애삼존불’이 ‘백제의 미소’라면 ‘얼굴무늬수막새’는 ‘신라의 미소’다. 수줍은 듯 웃는 얼굴 무늬에 고대인의 정겨운 감성이 묻어난다. 1972년 일본인 다나카 도시노부가 기증한 것이다. 기증이 없었다면 물고기무늬병의 물고기는 소장자의 자족으로만 머물렀을 것이고, 신라의 미소는 우리 민족을 향해 웃지 못했을 것이다. ‘독점’되던 유물이 기증을 통해 ‘공유’됨으로써 가치가 더욱 풍성해진 사례다. 각 박물관이 유물을 확충하는 주요 통로인 기증은 문화재 사랑의 가장 빛나는 형태다.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유물을 아무런 대가 없이 내놓은 수집가들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회자하기도 한다.


손기정 선생이 기증한 청동투구는 일장기를 달고 베를림올림픽 마라톤에서 뛰어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을 되새기게 한다.
◆“내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


박물관이 유물을 확보하는 경로는 크게 발굴·구입·기증으로 나눌 수 있다. 유물 수로 볼 때 국립박물관은 발굴의 비중이 가장 크고 구입, 기증의 순이다. 발굴은 일제강점기 이래 꾸준히 진행돼 유물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구입은 최근 몇 년 사이 ‘쥐꼬리 예산’이 책정돼 관계자들의 한숨이 깊다.

전국 12개 국립박물관의 유물 구입예산은 2005년 72억원으로 최고를 찍은 뒤 해마다 줄어 2011년 이후 3년간 28억8000만원으로 동결됐다. 국보나 보물급 유물이 경매에서 30억원을 넘어가는 일이 적잖아 예산 모두를 써도 유물 1점을 살 수 없다는 자조가 깊다.

지난해에는 유물 구입예산이 한 푼도 없는 지역 박물관의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니 유물의 확충이라는 면만 단순하게 놓고봐도 기증의 중요성은 커진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소장유물 30만여점 중 2만8000점가량이 기증유물이다. 울산박물관 4300여점 기증유물은 전체의 절반 정도에 이른다.

기증의사를 밝힌다고 해서 박물관이 무조건 수용하는 건 아니다. 박물관 자체적으로 대상 유물의 가치, 활용도, 상태 등을 따진다. 박물관의 성격에 부합하는지도 수용 여부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울산박물관이 울산과 관련된 유물에 가중치를 두는 것을 일례로 들 수 있다. 기증자 역시 관리·활용 능력 등을 따져 보고 박물관을 고른다. 백제사 전공인 계명대 노중국 교수가 고서적 1만권을 기증한 곳은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이었다. “백제학 연구의 중심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당부를 담았다. 

송성문 선생은 가장 많은 국보와 유물을 기증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기증한 대보적경은 국보 246호로 지정되어 있다.
◆수백억원대 보물도 “그냥 가져 가라”

유물 기증이 사회 지도층·부유층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경제력을 바탕으로 오랜 세월 수집한 명품을 대가 없이 내놓은 이름난 수집가들의 사례가 세간의 관심을 끄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명품의 탄생’(이광표 지음, 산처럼)이란 책에는 통 크고 아름다운 기증 사례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베스트셀러 ‘성문종합영어’의 저자 송성문 선생은 가장 많은 국보를 기증한 것으로 유명하다. 송 선생은 2003년 3월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보 246호 ‘대보적경’을 비롯한 국보 4건과 보물 22건을 기증했다. 팔았다면 수백억원대를 호가할 유물이었다고 한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1년 예산 60억원으로 겨우 두어점 구입할 수 있는 가치를 지녔다는 말이 나왔다.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선생의 ‘청동투구’는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뛰어야 했던 아픈 사연을 되새기게 하는 유물이다. 1936년 손 선생이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고 부상으로 받았는데 베를린박물관에 보관되다 1986년에서야 전달됐다. 기원전 6세기쯤 그리스의 코린트에서 만들어지고, 1875년 올림피아에서 발굴된 유물로 1994년 기증됐다.

일본인의 기증은 외국인 기증에서 유독 눈에 많이 띈다. “이름에 김(金)자가 들어 있어 나는 김해김씨의 후손”이라는 농담을 자주했다는 가네코 가즈시게(金子量重) 교수는 아시아 각국의 민속문화재와 사진자료 등 수만점을 국립민속박물관 등에 전달했다. 그가 기증한 ‘미얀마 공양구’는 아시아 불교문화의 화려함을 오롯이 전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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