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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가 사망한 땅 쿠시나가르에 있는 열반당. 한떨기 꽃이 부다를 기리고 있다. |
개중에는 일확천금을 얻기 위해 아시아로 향하던 무역선도 있었고, 국가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대선단을 꾸린 중국의 함대도 있었다. 어떤 여행은 정복을 위한 사전시찰 목적으로 이뤄지기도 했으니, 어쩌면 당시 여행의 가장 큰 계기는 욕망의 발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욕망의 정반대편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적 열정이 여행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었다. 이른바 성지순례라는 이름의 여행이 그것이다.
신들의 땅, 아니 신들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성지순례는 고행의 연속이었고, 어떤 면에서 성지순례는 일정 부분의 고통이 수반되어야 의미가 있다고 믿어졌다. 인도로 갔던 중국의 현장이나 신라출신 승려인 혜초의 여행길에 가장 가까운 친구는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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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성지로 향하는 사람들. |
그들은 앞선 여행자들의 죽음의 흔적인 해골을 이정표 삼아 사막을 횡단했고, 사막의 모래바람 소리를 길을 가다 죽은 사람들의 울음소리로 묘사했다. 세월이 흘러 도로가 뚫리고 기차가 다녀 여행 다니기가 편해졌지만, 여전히 성지순례는 고행이어야 한다는 명제에 충실한 채 고통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심지어 성지로 연결하는 도로 건설 그 자체를 반대했다. 고행이 없는 성지순례는 그저 여행일 뿐 어떠한 종교적 감흥조차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꽤 많은 인도인들은 ‘맨발의 청춘’이 되어 인도의 산야를 느릿느릿 걸어 성지에 도착한다. 현대문명의 이기를 결코 포기할 마음이 없는 나는 성지를 향해 끝없이 이어진 맨발의 행렬을 보고 꽤나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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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 성지에는 언제나 오색의 깃발이 휘날린다. |
당시 나는 그저 불편함만을 온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직각으로 세워진 인도 버스의자의 딱딱함, 느려터진 버스, 끊임없이 올라타는 인도인들과 그들의 몸에서 나는 낯선 채취로 인해 그저 힘이 들기만 한 길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순례행렬 속으로 뛰어들었다. 묻지 않고는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압 까하세 까하헤?(당신은 어디서 왔나?)
메 오리샤 쎄 아야훙.(나는 인도 동부 오리샤에서 왔다.)
압 오리샤쎄 끼뜨나 마이네 메 야하 아예헤? 압 칼리 페달세 아예헤?(오리샤에서 대체 몇 달이 걸린 거야? 정말 그 길을 걸어서만 온 건가?)
도스티, 메 야하 뿌라 짜르바르 아야차. 짜르 마이네 락따헤. 메 야하 빤치딘 러훙가. 피르 우스께 밧, 메 와뻐스 자훙가.(친구, 나는 이 길을 벌써 네 번이나 걸어서 왔다. 여기까지 4개월이 걸렸고, 나는 이곳에서 5일간 신과 만날 거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거야.)
그의 언어가 날아와 내 입을 막았다. 나는 한동안 할 말을 잃었고 그러지 않아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종교인들의 축제 속에서 더더욱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남아 그들의 열기 속에서 겉돌기만 했다. 그들과 나의 감정선 속에는 막 같은 것이 있어 둘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나는 성지순례를 해본 적이 없다. 성지를 가본 적은 있지만 그것은 결코 순례의 형식을 띠지 못했다. 나는 지금껏 일로서 성지를 방문했고, 일이기에 객관적으로 그저 관찰했을 뿐 결코 사람의 마음속으로 뛰어들지는 못했었다.
그간 평탄했던 여행은 운이 좋았던 것일까, 성지순례라는 목적을 두는 순간 여행은 꼬이기 시작했다. 성지로 들어가기 위한 첫 기착지 파트나(Patna)에서 나는 뜬금없는 친이슬람 시위대를 만났다. 9·11직후였던 당시 인도는 뭔가 미국에서 벌어진 비극을 고소해하는 느낌이 완연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인도의 이슬람교인들은 공공연히 친 오사마 빈 라덴 시위를 벌였고, 나는 그 시위행렬을 보고야 말았다.
직업의식이 발동하는 순간, 나는 캠코더를 들고 시위행렬을 찍었고, 낫과 몽둥이를 든 시위대는 외국인인 나에게 관심을 표현하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나는 시위대에 에워싸였다. 이 상황에서 이들을 힘으로 밀고 포위망을 뚫겠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내 선택은 단순했다.
오사마 빈 라덴 진다밧!!(오사마 빈 라덴이여. 영원하라!!)
나는 그들의 구호를 따라하며 잠시 시위대의 일부가 되었고, 시위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와 인사까지 하고서야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성지순례의 첫 도시에서 나는 종교 간 충돌이라는 또 다른 의미의 종교적 열정을 목격해 버린 셈이다. 한숨 돌렸을 때쯤, 내 머릿속에는 앞으로 벌어질 이 여행이 꽤나 다이나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작가
≫여행정보
한국인들이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인도를 방문한다면 그 이유는 딱 한 가지, 불교 성지를 찾기 위해서다. 부다가 태어난 곳, 깨달은 곳, 첫 설법을 한 곳, 입적한 곳을 4대성지라고 하고, 여기에 주요 행적지 4곳을 더한 8대성지가 불교성지 순례의 핵심지역이다. 10세기 이후 불교가 인도에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탓에 불교 성지라는 곳들은 척박하기 짝이 없고 치안도 불안한 지역이 많아 개별 여행은 여행경험이 많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도관광청과 철도청이 연합해 만든 공기업 인도철도관광공사(www.irctc.co.kr)에서 시행하는 ‘대열반 열차’(Maha Parinirvan) 투어 프로그램은 불교 성지 순례를 위한 괜찮은 대안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일정 내내 인도 경찰차량이 호위하고 대부분의 일정이 기차여행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최소한의 안전성과 안락함이 보장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인들이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인도를 방문한다면 그 이유는 딱 한 가지, 불교 성지를 찾기 위해서다. 부다가 태어난 곳, 깨달은 곳, 첫 설법을 한 곳, 입적한 곳을 4대성지라고 하고, 여기에 주요 행적지 4곳을 더한 8대성지가 불교성지 순례의 핵심지역이다. 10세기 이후 불교가 인도에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탓에 불교 성지라는 곳들은 척박하기 짝이 없고 치안도 불안한 지역이 많아 개별 여행은 여행경험이 많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도관광청과 철도청이 연합해 만든 공기업 인도철도관광공사(www.irctc.co.kr)에서 시행하는 ‘대열반 열차’(Maha Parinirvan) 투어 프로그램은 불교 성지 순례를 위한 괜찮은 대안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일정 내내 인도 경찰차량이 호위하고 대부분의 일정이 기차여행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최소한의 안전성과 안락함이 보장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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