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걸작 중의 하나로 꼽히는 ‘베 짜는 여인들’은 그리스 신화 속 아라크네의 이야기다. 지성의 여신임과 동시에 모든 가사활동을 주관하는 아테나 여신은 베 짜던 여인들의 수호신이기도 했는데, 베 짜는 기술이 뛰어났던 아라크네는 자신의 솜씨가 여신보다 낫다고 제 입으로 자랑하고 다니다 여신의 진노를 산다. 아테나는 아라크네와 솜씨를 겨루기 위해 노파의 모습으로 찾아가, 신들에게 도전한 인간들이 겪어야만 했던 비참한 형벌을 천 위에 화려하게 수놓기 시작했다.
반면 아라크네의 베에는 불경스럽게도 올림포스의 신들이 인간을 유혹할 때 저질렀던 명예롭지 못한 애정행각들이 새겨졌다. 제우스와 포세이돈, 아폴론, 디오니소스의 겁탈 및 각종 비행 등 신들을 모욕하는 내용이었지만 그녀의 작품은 아테나조차도 흠잡을 데 없을 만큼 훌륭하였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여신은 아라크네의 베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이에 좌절과 비탄에 빠진 아라크네는 목을 매 자살하고 만다.
여신의 분노는 이에 그치지 않고 그녀를 뱃속에서 실을 뽑아 베를 짜는 거미로 둔갑시켜 자자손손 형벌을 받게 만들었다.
벨라스케스의 ‘베 짜는 여인들’은 여신 아테나가 팔을 휘두르며 귀부인들과 담소를 나누는 밝은 신들의 공간과, 맨 앞줄의 왼쪽에 흰 천을 머리에 감싼 아라크네가 있는 어둡고 초라한 인간의 공간으로 양분된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아라크네의 표정과 바닥에 흩뿌려진 천 조각들이 신과 인간의 대결이 얼마나 무모하고 덧없는 일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인간의 어리석은 자만을 꾸짖는 교훈을 전한다. 신에게 도전하기 위해 쌓아올렸던 바벨탑, 온갖 재주를 부리다 부처와의 대결에서 져 오행산에 갇힌 손오공이 대표적이다. 다른 신화 속에도 인간의 자만은 늘 꾸짖어 마땅한 부끄러움으로 나타나 있다.
얼마 전, 충남에서 해일이 일어 여행객들이 변고를 당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미얀마에서는 사이클론 피해로 10만여명이 사망하였다는 보도가, 중국 내륙 쓰촨성에선 사상 최대의 강진이 일어나 수많은 인명피해가 났다는 비보가 들린다.
이 같은 참사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인 동시에, 인간의 무분별함과 안일함에서 발화한 인재(人災)다. 미얀마 정부는 태풍의 피해 예고를 40여차례 묵살하였으며, 피해를 본 다음에도 그저 영구 집권을 위한 국민투표에만 혈안이라 하며, 쓰촨성 지진피해 역시 대형 지진이 예고된 곳이었는데 내진 관리 등이 총체적으로 부실해 피해를 더 키웠다고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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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보 바람성형외과원장. |
현대화될수록 심각해지는 환경파괴, 식량위기, 새로운 질병의 출현, 전쟁과 테러 등 인류가 대면하고 있는 총체적 위기의 원인은 곰곰 살펴보면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발전을 추구했던 인간의 자만과 어리석음에 있다. 자신의 작음과 우둔함을 아는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때이자, 그렇게 대자연의 순리에 다시금 고개를 숙여야 할 때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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