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낙하산’이다. 정부 부처 요직과 청와대·국무총리실을 거쳐 공기업 사장에 올랐으니 이만한 낙하산이 없다. 하지만 이런 단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쉼 없이 분출하는 그의 열정과 도전에 그간의 선입견은 눈독듯 사라졌다. 그는 ‘메기’를 자처한다. 미꾸라지들이 담긴 수조에 들어가 이리저리 그들을 쫓아다니며 훨씬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내겠다는 각오다. 그런 다짐에서 평온한 공직사회에 끊임없이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는다. 금융공기업에 첫발을 디딘 그는 청탁문화 관행을 뿌리째 뽑아버렸다. 찾아오는 민원이 아니라 찾아가는 민원으로 물길을 바꿨다. 금융시장에도 가차 없이 돌직구를 던진다. 새로운 금리체계를 도입해 이자 부담을 줄이고 투명성을 높였다. 그의 열정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10일 서종대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을 만나 그의 ‘메기 철학’을 들었다.

―취임 후 인사청탁 명단을 공개했다고 들었다. 너무 과격한 조치가 아닌가.
“직원들에게 인사청탁은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인사청탁을 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능력 있는 사람이 했다면 사장 말을 못 믿어서고, 능력 없는 사람이 했다면 다른 사람의 자리를 가로채려는 것이다. 둘 다 나쁘다. 그런데도 사흘이 지나지 않아 3건이 들어오더라. 공식 석상에서 청탁 대상자 이름을 낱낱이 공개해버렸다. 그 후로는 아무도 청탁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럼, 직원 인사는 누가 하나.
“기관장이 직원들 면면을 알고 인사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일일이 만날 수도 없고 만난다고 해서 그 사람의 특성과 능력을 속속들이 알 수도 없다. 나는 꼭 세 사람만 한다. 기획조정실장, 홍보실장, 인재경영부장처럼 사장과 경영철학을 공유해야 하는 사람은 직접 뽑는다. 나머지 직원들은 직급별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거쳐 인사위원회에서 결정한다. 그러니 직원들이 사장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 자기 일을 소신껏 하면 된다.”
◆‘10초 룰’을 지켜라!
―민원부서에 ‘10초 룰’ 규정을 만들어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데.
“누구든 민원부서에 전화를 걸었다가 기분을 망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공사로 걸려오는 전화는 무조건 10초 안에 응답하게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콜센터에 가보고 직접 전화도 여러 번 걸어봤다. 지금은 5∼6초면 전화를 받는다. ‘짜증’ ARS(자동응답시스템)도 고쳤다. 통상 ARS로 전화를 하면 누르는 번호가 7, 8번을 넘어서기 일쑤다. 그 바람에 민원인이 번호를 잘못 기억해 자주 곤란을 겪게 된다. 이런 불편을 없애기 위해 ARS가 세 번을 넘어가는 일이 없게 만들었다. 선택사항은 1번과 2번까지로 제한했고, 세 번을 누르면 무조건 상담원과 연결된다. 상담원 수도 올해 10명 정도 늘리고 각 지점에 우수 상담사를 배치했다. 그 덕에 올해 한국능률협회에서 우수 콜센터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른 비용은 아끼더라도 민원 지출에는 팍팍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택사업자의 민원을 신속하게 처리해 호평을 받고 있다. 취임 일성이 어떤 민원이든 성심성의껏 응대하라는 것이라고 들었다.
“과거 건설업계에서는 금융기관 문턱이 높다는 인식이 많았다. 그들의 어려움을 알기에 직원들에게 ‘무조건 친절하게 응대하고,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되는 방법을 찾아서 답변하라’고 당부했다. 직원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전화 소리만 들어선 안 된다. 직접 민원인을 만나 처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전국의 주요 사업자를 초청해 애로사항을 듣는 자리도 마련했다. 그들에게 내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명함을 주고 언제든 전화하라고 했다. 실제로 두 번 전화가 걸려와서 담당자를 찾아 호통쳤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주택금융공사에 민원을 하면 친절하게 처리해준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사장님, 짤렸을 때 기분 어땠어요?”
―직원들과의 소통에도 누구보다 열성이라는 평판이 돌고 있는데.
“외부에서 온 경영자는 직원들이 경계하는 면이 있다. 이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점심 약속이 없는 날은 부서를 돌면서 직원들과 밥을 먹고, 내부통신망에 글이 올라오면 댓글을 단다. 직접 글을 써서 올리고 직원들의 사소한 얘기에도 맞장구친다. 올해 두 번 직원들과 자유롭게 묻고 대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궁금한 점을 포스트잇에 쓰라고 했더니 두 번 합쳐 600개 정도 질문이 들어왔다. 공사가 당면한 문제에서 개인사까지 참 다양했다. ‘공무원 하시다가 짤렸을 때 기분이 어땠느냐?’, ‘정권 바뀌면 우리를 버리고 갈거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그런 모임을 가지면서 직원들과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젊은층과는 별도 소통 채널이 있다고 들었다.
“청년이사회라는 게 있다. 4∼5급 젊은 직원 22명을 뽑아서 청년이사회를 만들었다. 회사 일에 적극적인 사람들을 모아서 정식 이사회에 올라가기 전에 이들에게 먼저 의견을 묻고 발표도 하게 한다. 청년 이사들과 어울리면 배울 게 많다. 참 재미있다. 지난주에도 이들과 같이 점심을 먹었다.”
―원활한 내부 소통은 조직에 활기를 돌게 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힘이 되지 않겠나.
“매월 직원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점을 공모하는데 1차 심사 후 제안 내용을 직접 읽어보고 부장들과 상의한다. 직원들도 ‘올리면 정말 고쳐진다’는 생각에 적극적이다. 처음엔 매달 50건 정도였지만 요즘은 200건씩 올라온다. 직원들의 애사심이 늘어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금융시장에 ‘메기’를 풀어놓다
―생소한 금융분야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을 텐데.
“비금융권 출신이라 처음엔 하나도 수월한 게 없었다. 문외한이 사고를 쳤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정말 열심히 했다. 시중은행의 행장, 부행장들하고 거의 매일 점심·저녁을 했다. 함께 삼겹살에 소주를 먹으면서 스킨십했다. 형님동생 하고 허물없이 지내는 행장이 서너 명은 된다. 올해 주택금융공사에서 처음 출시한 ‘적격대출’(내집 마련 목적의 대출자들에게 금리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주택금융공사가 보증한 장기 고정금리 대출)의 성공도 그런 인맥과 이해가 밑거름이 됐다.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세 번이고 만나서 설득했다. 새벽에 일어나 1시간씩 기도까지 했다. 적격대출 성공이 그냥 된 게 아니다.”
―그런 노력 덕택에 적격대출이 올해 최고 히트상품이 되지 않았겠는가.
“적격대출은 3월 출시된 이래 폭발적인 인기를 거듭하고 있다. 매월 1조∼2조원씩 대출이 늘어 지난달에 벌써 잔액이 11조원을 넘어섰다. 시중은행이 하던 고정금리 대출은 적격대출로 거의 통합됐다고 보면 된다. 적격대출은 금융시장의 금리체계를 혁신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낮은 금리는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끌어내리고 있다. 가계대출자에겐 그만큼 부담이 주는 효과가 있다. 적격대출은 하우스푸어에겐 ‘산타’와도 같은 존재다. 연 6% 금리에서 4%로 갈아타게 했으니까. 낮은 고정금리이므로 금리가 갑자기 올라 가계가 수렁에 빠지는 위험도 없다. 적격대출은 기본적으로 투명하다. 기존에는 주택담보대출 최저 금리가 3.9%라 해도 실제 이 수준으로 대출 받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개 지점장 전결금리니, 부대조건이니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 적격대출은 이런 조건이 없다. ‘유리알’ 금리다.”
―주택연금도 역점 사업 중 하나다. 향후 주택연금 100만가구 시대를 열 청사진은.
“주택연금 가입자 수가 올 들어 두 배가량 늘었다. 주택보유 인구의 고령화로 가입자는 앞으로도 크게 증가하리라고 본다. 2030년이 되면 연금 가입자 100만명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가입자가 늘면 자산 관리와 리스크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장기용역을 줘 세부 방안을 마련 중이다.”
서 사장은 ‘매출액에 집착하지 말자. 리스크 관리 잘하자. 클린뱅크를 만들자. 자꾸 불안해하면 안 된다’고 자주 혼잣말을 되뇐다. 자신에게 주문하고 스스로 세뇌하는 것이다. 공사의 앞날을 묻는 질문에 그는 “지금 열심히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만큼 앞으로 10년 후엔 우리 회사가 세계 최고 수준의 주택금융 전문기관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본다. 아마 개발도상국에서 우리의 노하우를 배우러 오게 될 것”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대담=배연국 부국장 겸 경제부장, 정리=김유나 기자 yoo@segye.com
서종대 사장은?
▲1960년 전남 순천 출생 ▲순천고·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25회 행정고시 ▲청와대 경쟁력기획단 SOC과장 ▲건설교통부 신도시기획단장·주택국장·주거복지본부장 ▲국무총리실 세종시기획단 부단장 ▲카이스트 건설환경공학과 초빙 교수 ▲2011년 11월∼현재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
▲1960년 전남 순천 출생 ▲순천고·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25회 행정고시 ▲청와대 경쟁력기획단 SOC과장 ▲건설교통부 신도시기획단장·주택국장·주거복지본부장 ▲국무총리실 세종시기획단 부단장 ▲카이스트 건설환경공학과 초빙 교수 ▲2011년 11월∼현재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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