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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 필리핀 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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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7-18 10:43:37 수정 : 2008-07-18 10: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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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같은 풍경… 꿀맛같은 휴식
◇그림같이 아름다운 세부 근처의 작은 섬.
며칠 전 필자가 운영하는 여행 커뮤니티 회원들과 함께 필리핀의 세부 섬에 다녀왔다. 목요일 저녁에 출발해 일요일 저녁에 돌아오는 3박4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주5일 근무를 하는 직장인들은 금요일 하루만 휴가를 내면 되기 때문에 상당히 매력적인 스케줄이었다.

세부 섬이 이번에 여행지로 낙점된 이유는 간단했다. 커뮤니티 회원 한 명이 이곳에서 요트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를 안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여행 커뮤니티에서 알게 되어 친구가 되었는데 힘들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한결같이 많은 도움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내게 항상 퍼주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필리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버스인 지프니에.

사람이 너무 좋기 때문일까. 한국에서 그는 사업가로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번에 인생을 걸고 야심차게 시작한 요트사업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홍콩에서 구입해 필리핀으로 옮기던 첫 번째 요트는 실종되었고, 두 번째 요트는 거짓말처럼 침몰했다.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기 전에 생긴 어이없는 일에 그는 한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몇 개월 만에 그나마 ‘운이 좋았던’(?) 세 번째 배가 세부 섬에 무사히 도착해 요트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이번에 커뮤니티 회원들과 시승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4시간 반이 지나자 한국의 버스터미널보다 작은 세부공항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그는 동남아의 뜨거운 햇살에 새까맣게 타 있었지만, 한국에서보다 밝고 건강해 보였다. 친구들을 만난다는 설렘에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웃음이 감돌았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네, 정은씨도 잘 지내셨어요?”

가이드를 자처해 호텔까지 가는 동안 세부에 대해 안내를 해주는데 친구들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세부로 이사 온 이후 몇 달 동안 우리를 그리워했었구나!’ 한눈에 티가 난다.

다음날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막탄의 요트클럽으로 향했다. 유럽의 모나코와 칸과 같은 부유한 휴양도시에서나 보던 요트를 직접 타 본다니 꿈만 같았다. 회원들은 챙 넓은 모자, 선글라스 등으로 한껏 멋을 내고 눈앞의 그림 같은 요트와 사진을 찍으며 들뜬 마음을 추스르느라 정신이 없다. 
◇망고를 비롯한 열대과일이 가득한 과일시장.

요트 선원들의 손을 잡고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신발을 벗고 요트에 올랐다. 승무원들의 새하얗고 깔끔한 옷차림만큼이나 요트는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가볍게 물살을 가르는 요트의 갑판 위에서 너나없이 사진촬영을 시작했다. 모두 화보 촬영을 나온 모델처럼 포즈를 취한다.

특별히 우리를 위해 한국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에 정박해 새우, 게, 바비큐 등의 맛난 음식과 필리핀 맥주 산미겔로 점심식사를 하고 스노클링을 즐겼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는 젖은 머리를 바닷바람에 말리며 와인 한잔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이곳에서 계속 사실 건가요?” “네, 앞으로 이 사업을 계속할 생각이어서 한국에는 돌아갈 생각이 없어요.” 아쉽다. “세부에서의 생활은 어때요?” 뜬금없는 대답이 흘러나온다. “물이나 좀 제대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막탄섬에 자리한 일급 호텔의 수영장. 2인 1실에 100∼150달러 한다.

수줍음이 많은 그는 한국에서 연애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여자 친구가 생겼단다. 일생일대의 청춘사업도 시작한 것이다.

일정 중 짬을 내어 저녁식사를 하며 이 커플을 만났다. 그들의 러브스토리는 커피전문점에서 시작되었다. 차 마시는 모습에 반해 말을 걸었단다. 평소 그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소심한 성격의 그가 찻집에서 여자에게 말을 걸다니 세상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제 3개월이 되었는데 여자 친구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이 따뜻하다. 여자 친구의 애교는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여자인 내가 봐도 녹아내린다. 

지난해 한국에서도 전시회를 했던 프랑스의 사진작가 윌리 로니스(Willy Ronis)의 말이 생각났다.

“인생은 행복이자 동시에 슬픔이에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예를 들어, 난 나의 아내가 나보다 일찍 죽을지는 생각도 못했죠. 당연히 나이가 더 많은 내가 먼저 죽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나의 아내는 알츠하이머병으로 1992년 세상을 떠났죠. 인생은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고 될 수 있는 한 행복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는 세부에서 행복을 위한 일생일대의 두 가지 사업을 동시에 진행 중이다. 인생을 건 요트사업도, 느지막이 시작한 청춘사업도 모두 성공하길 기원한다.

여행작가

#세부(Cebu)

세부는 1521년 포르투갈의 지원을 받아 향신료를 찾아 항해를 하던 페르디난드 마젤란에 의해 처음으로 서구 사회에 알려졌다. 마젤란은 막탄섬의 족장이던 라푸라푸에게 죽음을 당했다. 이후 1561년부터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 길이가 225㎞인 세로로 긴 섬으로, 현재는 필리핀의 최대 휴양도시 중 하나다. 대부분의 리조트형 호텔들은 막탄에 몰려 있으며 막탄 세부 국제공항도 근처에 있다. 쇼핑몰 등이 있는 세부 시내는 막탄에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여행정보

한국에서 필리핀의 세부로 들어가는 직항은 아시아나, 필리핀 항공, 세부 퍼시픽 에어가 있다. 4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여름철은 필리핀의 우기로 비가 많이 오지만 세부는 주변이 섬으로 둘러싸여 태풍으로부터도 비교적 안전하다. 그래서 사시사철 여행하기에 좋다. 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이 빠르다. 일반적으로 단체관광이나 리조트 여행으로 많이 간다. 개별 여행을 준비하는 것보다 단체관광이 항공, 숙소, 가이드 등을 포함한 요금이 훨씬 저렴하다. 현지 화폐는 페소(1페소는 약 25원)지만, 관광지에서 달러 사용에 대한 불편은 거의 없다. 환전소도 시내 곳곳에 있다. 추천할 만한 음식으로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영향을 받은 새끼돼지 통구이인 레촌(Lechon)과 닭고기 바비큐, 그리고 망고 주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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