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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획] 살인적 격무… 고물장비… ‘死鬪의 연속’

관련이슈 소방관이 쓰러진다

입력 : 2008-03-24 15:41:50 수정 : 2008-03-24 15: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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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이 쓰러진다] ① 주84시간 이상 근무 '인권 사각지대'
◇현직 소방관과 ‘소방공무원을 사랑하는 모임’ 등 민간단체 회원들이 2007년 11월9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근로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소방발전협의회 제공
취재팀은 소방발전협의회(회장 박명식)와 소방공무원을 사랑하는 모임(운영자 김태준) 사이트에 정회원으로 가입한 소방관을 상대로 3월 7일부터 10일 동안 온라인 전자 설문조사를 시도했다. 한국 소방의 현 주소와 실태를 실증하기 위해서다.
설문은 직업 만족도, 근무 여건, 스트레스 등 건강 상태, 소방정책 등 44개 항목(주관식 7개 포함)으로 구성됐다. 전체 소방관 3만945명(3월 말 기준) 중 3028명, 즉 열 명 중 한 명꼴로 응답할 만큼 큰 관심을 보였다. 전직 소방관 19명(0%)도 설문에 응했지만 너무 적은 탓에 분석에서 제외했다.

설문조사 주관식 항목에는 ‘현대판 노예’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표현이 담겨 있었다. 공무원 사회에서 아직도 이렇게 낙후된 분야가 있을까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24시간 맞교대하며 온갖 끔찍한 현장을 경험하는 소방관들은 정신질환 치료율이 9%에 달할 만큼 시달리고 있다. 무기력한 소방행정 당국과 국민들의 낮은 인식도 이들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 요인이다.

◆소방관, 사기가 바닥=서울의 한 소방관은 알코올중독 상태다. 몇 달째 치료받지만 좀처럼 고치기 어렵다고 한다. 동료인 Y 소방관은 “보기에 딱하지만 어쩔 수 없다. 평소 현장에서 받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술로 풀다보니 조금씩 쌓여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구급대원들은 환자를 업어 옮기다가 생긴 허리 통증의 공상 처리가 되지 않는 탓에 속을 끓이고 있다.

설문에서 드러난 소방관들의 근무 환경과 소방시스템에 대한 불만은 알려진 것보다 심각했다. 소방관에 만족하는 사례는 10명 중 3명에 불과했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지 않은 사람은 10명 중 고작 1명이었다. 10명 중 8명은 자식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잠재적 이직자’가 많고, 소방관의 긍지가 떨어지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수치다.

'화마가 쓸어버린 아비규환의 현장을 빠져나와 물 한 모금으로 검댕이 가득 고인 목을 적신다. 혹시 누군가의 가냘픈 외침을 못들은 건 아닐까. 물맛이 쓰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구조현장에서 두 소방관이 녹초가 된 채 한숨을 돌리고 있다. /김중태 문화원 제공
이들은 재난·사고 현장에서 동료가 순직했을 때, 분리된 사체를 수습해야 하는 끔찍한 현장에서 “이 짓으로 먹고살아야 하나”, “삶의 회의가 밀려든다”고 토로했다. 처우 개선은 못해 줄망정 툭하면 구조조정 소식이 들려 가슴이 철렁하다는 하소연도 나왔다.

◆인원 부족·열악한 장비 탓에 사지(死地)로 내몰려=소방관은 제복 입는 공무원 중 유일하게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절대 인원이 부족한 탓이다. 경찰과 교정직은 3 또는 4교대 근무 중이다. 문제는 24시간 맞교대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번날 불시 동원, 각종 교육 및 예방 점검, 그리고 무기한 특별경계근무 동원까지. 이런 탓에 가족들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어렵다는 하소연이 터져 나온다. 일부 소방관들이 ‘현대판 노예’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는 이유다.

각종 소방 장비도 무척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는데도 공기 호흡기부터 구급차에 이르기까지 불량 장비 탓에 소방관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증언이 쇄도했다. 화재 진압 및 구조·구급 활동에 사용하는 차량, 보호장구에 대한 만족도 설문에도 17%만이 ‘만족한다’고 답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2007년 7명이 순직하고, 286명이 부상했다. 2003년 이후 5년간 평균 6.8명이 순직하고 317명이 공상처리됐다.

◆‘인간답게 살고 싶어요’ 소방관 행동에 나서=소방관은 특수직 공무원이란 신분상 제약 탓에 오랫동안 억눌려 살아왔다. 고참 소방관들이 ‘노예 근성이 생겼다’라고 말할 정도다. 소방관들은 ‘근무 형태와 처우 개선 요구’라는 숙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대해 소방방재청의 낮은 위상과 노력 부족(52%), 요구를 대변할 조직이 없어서(30%), 특수직 공무원의 한계(7%)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소방관들이 ‘인권 보장’을 내세우며 힘을 모으고 있다. 2006년 3월 전·현직 소방관들로 구성된 소방발전협의회가 발족한 이후 소방관들은 잃어버린 권리를 찾으러 거리로 나서고 있다. 지난달 숭례문 화재 이후 ‘화재 특별경계 100일 작전’이 떨어지자 소방관과 가족들이 국무총리실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을 집중 공략해 결국 한승수 국무총리의 사과를 받아낸 것이 이 같은 단초를 보여주는 것이다.

특별기획취재팀=채희창(팀장)·김동진·김태훈·양원보·송원영 기자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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