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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家 사람들] 정치보다 재미있는 사투리 연극 ‘뻘’,‘전명출 평전’

입력 : 2012-07-19 17:56:19 수정 : 2012-07-19 17: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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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뻘'

들을수록 정감 가는 사투리 연극 2편이 호평을 받고 있다. 두산아트센터 창작자 육성 프로그램의 지원 작가인 김은성의 신작 ‘뻘’은 ‘낙지 대가리’로 은유한 비극의 시대를 다채로운 전라도 사투리와 대중음악으로 그려내 웃음을 선사했다. 백하룡 작가와 박근형 연출의 신작 연극 ‘전명출 평전’은 경상도 사투리의 향연 속으로 관객들을 초대한 뒤 ‘당신은 금수씨군요’란 재기발랄하지만 강렬한 대사로 서늘한 웃음의 묘미를 만끽하게 했다.

[리뷰] 총칼보다 강한 노래와 사투리의 힘! 연극 ‘뻘’

“삼당합당? 에라이 거시락 똥구녁이나 뽈아라. 요노무 나라는 말이여 살길을 갈체주문 죽을 길로 가부는 나라여. 이리로 가야지라 제대로 흘러가는 물길은 기연시 막아부러. 요라고 가야지라 똑바로 흘러가는 물길은 뭔 수를 써서라도 막아부러.써글놈의 세상, 변한다 변한다 해도 안변해. 변할 것 같다 변할 것 같다 해도 안변해. 똑같애. 똑같애. 역사라는 거슨 말이여, 반복되라고 있는 더러운 거시여.“

신문을 보던 활식(선종남)이 대사를 내 뱉자,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거꾸로 가는 역사에 대해 연극이 유쾌하게 말을 거는 방식이다.

연극 ‘뻘’은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원작의 배우 모자(아르까지나와 뜨리플레프)는 가수 동백과 운창으로 다시 태어났고, 배우 지망생이던 니나는 유명 가수가 되는 것을 꿈꾸는 벌교 역전 앞 식당 딸 홍자로 설정됐다.
 
‘총칼보다 강한 노래의 힘’이 연극의 중심을 잡아준다. ‘뻘’이 불러낸 ‘우리가 잃어버린 노래’ 속에선 휘바람, 하모니카, 노동요, 자장가 등을 만날 수 있다. 체홉 인물 속 복잡하게 얽힌 각 인물들의 특징이 잘 살아있다. 특히, 일명 ‘해산물 많이 나오는 노래’인 “칠게 길게 농게 엽낭게 눈콩게 털보긴눈집게”로 시작하는 블랙시걸의 노래는 5월의 그날에 스러져간 얼굴들을 하나 둘 떠오르게 해 작품 안에서 강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연극 '뻘'

뻘 밭에서 일어나는 개그가 아찔하다. 역사의 가해자든 피해자든 진흙탕 뻘밭을 함께 지나왔음을 가볍지만 절대 가볍지 않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입을 닫아버린 나조금(이지현 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갯벌을 이리저리 종횡무진 하는 백도일(김종태)의 모습은 김은성 작가와 부새롬 연출의 재기발랄함을 감지하게 했다. 

‘목란언니’ ‘순우삼촌’ ‘달나라 연속극’ 등을 집필한 김은성은 ‘관객들에게 소소한 위로를 건네는 작가’중 한명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 세워 소극장에 모인 관객들에게 끈끈한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는 게 특징. 손바닥을 탁 치게 하는 기가 막힌 미니 이야기는 덤이다. ‘뻘’에서는 가슴에 체증이 쌓인 일명 ‘트름병’에 걸린 ‘홍자’가 나온다. 사람들 가슴에 맺힌 한을 쓸어주는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홍자의 내면은 작가의 목소리와 다르지 않다.

김은성 작가는 연극 후반 다시 한번 더 튀어나온다. “요새 벌교 꼬막이 영 맛이 없단다...태풍이 와야 요 뻘이 시원허게 뒤집히는디. 태풍이 없응께 요 뻘이 골아분 거시여. 골아갖고 썩은 뻘을 한번 확 뒤집어 갈아 엎어야 되는디. 태풍이 안오는 거시여. 태풍이”. 힘 빠진 태풍 ‘카눈’이 절로 떠오른다.  7월 2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연극 '전명출 평전'

[리뷰]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당신의 얼굴이 연극 속에 풍덩 ‘전명출 평전’

‘전명출 평전’은 금수와도 같았던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 남자의 매달림을 감칠맛 나는 말맛으로 그린 연극이다.

연극은 관객들의 감상을 자극할 틈 없이 ‘속성’으로 진행된다. 서른 살 젊은 청년이자 성실한 영농후계자였던 전명출(정승길)은 어찌나 빠르게 타락하는지. 인생의 셔타는 순식간에 닫히고 새롭게 열린다. 명출은 마늘 한 접 훔치다 새마을 정신으로 멍석말이를 당한다. 그렇게 동네 망신을 겪은 뒤 속성으로 인간되는 삼청교육대에 다녀 온 뒤 결국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의 원인 제공자가 되버린다. 한 남자가 어떻게 ‘금수’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세 번의 절박한 매달림을 통해 보여주는 식이다.

30년의 시간을 100분 안에 담아냈다. 명출의 딸인 광옥(정세라)이 나래이터로 나와 인물에 대한 평가를 곁들인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 서거” “삼풍백화점 붕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 헤드라인으로 잡힌 거대한 신문지로 장식된 세트에 하나 하나 조명이 들어 와 19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을 압축적으로 이야기했다.

명출의 집은 위험한 철골구조물이다. 부실공사 피해자를 피해 야반도주 할 때, 처남댁(이봉련)과 바람이 나 아내(김선영)와 처남(서동갑)에게 들켰을 때 한 남자 인생의 버둥거림은 효과적으로 전달됐다.

연극 '전명출 평전'

풍자성이 짙은 연극이다. 그동안 박근형 연출이 보여준 소시민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 살려!”라고 절박하게  외치던 연극은 “당신은 금수씨군요’”고 한방 먹인 뒤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의 얼굴은 행복한가?라고. 야만의 시대, 금수의 시대를 살면서 비겁했던 우리 자신의 얼굴을 그리고 있어 쉽게 답할 수 없다는 점이 연극의 매력이다.

그렇다면 연극 ‘전명출 평전’은 영화 ‘박하사탕’의 연극버전인가 라는 의구심도 생긴다. 순식간에 내달음 친 연극은 후반 ‘아이스바’에 얽힌 추억=선함을 불러내 눈시울을 젖게 한다. 전명출을 끝까지 믿는 단 한 사람인 아내 순님의 마지막 눈물은 묘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눈부시게 환한 사람이자, 도덕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시대와 충돌한 남자의 파란만장 인생에 대한 위로라고 받아들인 사람은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지나친 감상주의로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29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공연칼럼니스트 정다훈(ekgns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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