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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家 사람들] ‘뚝배기 연극’이 익어가는 시간은 500분

입력 : 2012-06-14 17:10:38 수정 : 2012-06-14 17: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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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그을린 사랑'

올 6월 들어 개봉한 연극들의 긴 러닝타임이 화제다. 연극 ‘그을린 사랑’은 195분, ‘다정도 병인 양하여’는 160분,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는 150분이다. 3편의 연극을 다 보게 되면, 도합 500분이 넘는 시간을 극장에서 보내게 된다.

절로 ‘뚝배기 연극’이라고 부를만했다. 온도가 잘 떨어지지 않는 뚝배기에 담긴 음식은 먹을 때까지 아니 먹고 나서도 부글부글 끓듯이 3편의 연극이 남긴 온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뚝배기 연극’의 면면을 살폈다.

■  말과 음악의 연극 ‘그을린 사랑’

‘말과 음악 연극’이라 불릴 정도로 시적 표현과 풍부한 대사, 음악과 장면의 조화가 돋보이는 연극이다. ‘쓰고 떫은 과일’의 맛일지라도 다시 한번 맛보고 싶은 매력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판 오이디푸스 신화라 불릴만한 이번 작품은 시몽과 잔느, 그리고 그들의 형인 니하드 세 운명들의 이야기를 어머니 나왈의 황당한 유언을 통해 불러낸다. 인간 존재의 방정식을 풀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어디에서부터 시작할까?’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 그들의 뿌리는 사랑이 될 수도, 야만과 폭력일 수도 있다.

연극은 이들 모두의 근원을 시적 언어와 충격적인 이미지로, 또 잊지 못할 방법으로 연결하여 퍼즐을 맞추듯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암전시간이 이렇게 흥미진진한 경우도 드물지 싶다. 장르와 악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가 정재일은 30인조의 오케스트라와 전자소리를 활용해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키웠다. ‘말의 연극’의 단점인 지루함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60대의 나왈을 연기한 이연규의 두말하면 잔소리인 호연 외에도 빨간 코 광대의 웃음을 떠올리게 하는 나왈의 첫 아들 니하드를 비롯하여 총 3인의 역할을 맡은 이윤재 배우의 ‘뚝배기’에서 맛볼 수 있는 보온능력같은 연기도 빛을 발했다.  7월1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연극 '다정도 병인 양하여'

■ ‘리얼’과 ‘연극’ 사이에 새로운 길을 낸 ‘다정도 병인 양하여’

새로운 연극의 그립감(grip)이 이런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아라비안 나이트' 속 여자가 아닌 남자 세헤라자드가 나와 연애 이야기를 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관객의 머릿 속을 강아지 풀로 살살 간질이며 묘한 기분을 갖게 만드는 연극이 ‘다정도 병인 양하여’다.

연애를 채집하는 남자 성기웅의 사적인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오면 뒷담화를 듣기 좋아하는 관객들의 귀는 쫑긋해진다. 그것도 잠시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배역을 이탈하기도 하고, 스크린이나 플래카드를 사용하여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해 주기도 하는 등 관객들이 극으로의 감정이입을 할 수 없도록 여러 가지를 시도를 하자 객관적 관객 입장에서 무대를 주시한다. ‘브레이트의 거리두기’가 바로 떠오르도록 말이다.

연극의 막이 내린 뒤 쉽게 떨쳐낼 수 없는 온기는 마지막 다정과의 대화 내용을 관객에게 들려주는 장면에서 나왔다. 무대 정중앙에 선 성기웅 배우의 디테일한 표정 변화의 백미가 압권이다. 윤한솔 연출이 직접 출연한 ‘나는 야 쎅스왕’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도 만들었다. 두 명의 성기웅이 극적으로 만났지만 여전히 어색한 만남의 장으로 극을 마무리했다. 자기 분신 이화룡과 짝이 돼 탱고를 추는 장면이다. 호기심은 계속 생겼다. 남성 연출가가 아닌 여성 연출가가 이런 작품을 올렸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분명 이처럼 우호적인 반응은 나오지 않았으리라는 이상한 의문이 떠오른 점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24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  콧날이 시큰해지는 웃음 가득한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엄마(고수희)는 가슴을 쥐어 뜯으며 울고 있지만 음란 시스터즈들은 ‘까투리 사냥’을 부르며 흥을 돋는다. 슬픈 대목에서 여지없이 코믹하게 관객을 울리는 정의신의 장기가 빛을 발한다. 웃으면서 울고 있는 자신에게 다시 한번 놀라게 되는 연극이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이다.

 남산예술센터와 극단 미추의 2012 시즌 공동제작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는 힘겨운 삶의 조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전작 ‘야키니쿠 드래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이번작품은 홍길이네 이발소 부부보다는 네 자매의 각기 다른 사랑 이야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전쟁 중 일본군인과 한국인의 사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진희와 시노다의 결혼이 위험하게 보여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쪽 다리가 부족한 두 사람이 만나서 하나를 이루기까지의 이야기가 울림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배우들의 조합이 200% 온기를 불러낸다. 특히, 진희 역 배우 최수현의 연기는 관객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 분명 있었다. 다시 한번 열심히 살아보고 싶게 만드는 연극임에 틀림없다. 7월1일까지 남산예술센터.

공연칼럼니스트 정다훈(ekgns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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