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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家 사람들] 로맨틱 테너 강요셉을 심장으로 삼은 오페라 ‘라보엠’

입력 : 2012-04-06 11:43:38 수정 : 2012-04-06 11:4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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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연기·무대 3박자 척척
국립오페라단 ‘라보엠’ 전석매진 속에 호평

국립오페라단 '라보엠'

로돌포가 미미를 목 놓아 부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라보엠’은 실패한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국립오페라 창단 50주년기념으로 3일 막이 오른 ‘라보엠’은 음악·연기·무대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물론 그 중심엔 오페라 ‘라보엠’의 심장인 테너 강요셉이 있었다.

흔히 성악가들은 고음이 올라가는 부분에서 정색을 하고 노래에 몰입한다. 이렇게 되면 '연기'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된다. 쉽게 말해 관객들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에 무아지경인 오페라의 세계에서 잠시 잠깐 빠져나와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는 심정으로 가수를 주목 한다. 반면 강요셉은 달랐다. 로돌포의 유명 아리아 ‘그대의 찬 손’ 중 하이 C가 나오는 가사 ‘희망’ 부분을 전혀 힘들지 않게 소화하며 객석을 리드했다. 마스케라(maschera, 두강공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현대 발성법의 하나로 안면발성이라고도 함)발성을 이용해 소리를 자유자재로 내보냈다. 국내 오페라의 ‘희망’을 발견한 날이자 오페라 관객들의 눈과 귀가 열린 날 이었다. 1막에서 4막까지 연기와 가창이 혼연일체가 된 그의 모습에 배우 출신 가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다.

가진 것 없지만 마음만은 백만장자의 여유를 지닌 시인 로돌포의 감성질투 및 현실의 누추한 사랑에 고민하는 젊은이의 모습에 이어 짧았던 청춘을 그리워하며 처절하게 울부짖는 마지막까지 그의 연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뒷모습과 옆모습의 연기까지 디테일하게 살려낸 그의 섬세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 물론 리릭 레제로 테너의 미성을 아리아 곳곳에 불어넣은 가창이 밑바탕 되었기 때문이다. 로맨틱하면서도 감미로운 그의 음색은 매끄러운 레가토 ·윤기 가득한 고음의 광채가 더해져 관객의 귀를 호강시켰다. 극중 가사처럼 ‘기가 막힌 연극’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연출가 마르코 간디니와 무대디자이너 로익 티에노의 손에서 탄생한 무대는 현실과 비현실, 사실과 상징의 아이러니한 조화 및 여백의 미를 강조했다. 니콜라 마리의 조명디자인도 각 막의 집중도를 높혔다. 어두운 다락방(1막)과 화려한 까페 모뮈스(2막)의 거리가 명확히 대비되는 무대 전환 시간에는 객석에서 감탄이 터져나왔다. 무대 전환시간을 줄이는 효과와 더불어 레고 조각처럼 ‘아귀가 딱딱 맞게’ 열리고 닫히는 다락방 건물, ‘스르르’ 무대 위로 떠오르는 카페 모뮈스 건물 및 앙상블은 멋진 명화를 감상하는 듯 했으니 말이다.

국립오페라단 '라보엠'

국내에서 자주 만날 수 있던 오페라 ‘라보엠’이 국립오페라단 라인업에 들어갔을 때 실망했던 이들도 있었을 터. 하지만 성악가들의 호연과 서울 시향 정명훈 지휘자 특유의 카리스마로 푸치니의 풍부한 선율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전석매진의 신화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

청순가련형 미미로 분한 소프라노 김영미는 원래의 짝인 테너 김동원 대신 강요셉과 첫 무대를 장식했다. 1막에서 열쇠를 ‘주섬 주섬’ 찾는 연기에서 젊은 ‘미미’가 아니란 점이 확연히 티가 났으나 역시 노련하고 연륜있는 가수인만큼 성악적인 면에서 뛰어난 가창을 들려줬다. 기자초청 리허설을 통해 만나본 소프라노 홍주영의 ‘미미’는 보다 순수함이 강했다.

마르첼로 역 바리톤 우주호의 공명 가득한 음성, 무젯타 역 소프라노 박은주의 익살스런 연기와 고혹적인 가창은 분명 무대를 제대로 즐기고 있는 듯 했다. 젊은 예술가들 특유의 혈기방자함을 선보인 로돌포의 친구 3인방인 쇼나르역 바리톤 김진추, 콜리네역 베이스 함석헌이 1막과 4막에 보여준 앙상블도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외 국립합창단, PBC소년소녀합창단이 힘을 보탰다. 연극적 매력이 가득한 이번 오페라 가수들의 연기를 세밀하게 보기 위해선 오페라 글라스를 필히 지참할 것. 감격은 2배가 될 듯하다. 폭풍을 예고하는 관현악의 울음과 함께 쓰러지는 로돌포의 울부짖음을 보고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 관객이라면 감성이 메마른 사람이거나, 다른 단체의 ‘라보엠’을 보았을 확률이 높다.  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공연칼럼니스트 정다훈(ekgns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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