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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가 사람들]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할때 만나는 연극

입력 : 2012-03-24 14:16:45 수정 : 2012-03-24 14: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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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우리 동네 미쓰리'

새 봄 연극가에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는 연극들이 단연 화제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현대인들이라면 이번 주말 연극 한편 만나보는 건 어떨까?

◆ 구수한 시골 장터 연극, 우리동네 미쓰리

창작집단 툭의 ‘우리동네 미쓰리’는 쳇바퀴 인생을 사는 현대인, 특히 직장여성이라면 반가워 할 연극이다. 지금 이 시대의 서울에 살고 있는 가장 평범하고 특별하지 않은 ‘만년 경리 아가씨 미쓰리’(강지연)의 이야기를 재기발랄하게 풀어냈다. 한번 보면 절대 미워할 수 없는 담배가게 아저씨(김문호)의 어설프지만 진한 위로도 찡한 감동을 몰고왔다.

연극 '우리 동네 미쓰리'

연극 속에서 전성현 작가와 김수정 연출의 무한 자유 감각이 마구 만져진다. 추운 겨울 밤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 ‘키득’거리면서 읽는 만화 보는 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만큼 연극은 ‘무대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건 절대 없다’는 무대포 정신으로 종횡무진 관객의 혼을 쏙 빼놓았다. 각종 이벤트와 문화행사, 입담 좋은 약장수, 차력쇼등을 만날 수 있는 시골 장터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연극 속에선 두 명의 변사와 다양한 영상, 코러스들이 등장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렇게 연극, 무용, 영상분야 예술가들의 적극적 협업으로 ‘협동조합극’이 탄생했다. 작은 무대를 꽉 채운 15명 배우들의 열정이 상당히 뜨겁다. 4월 1일까지 가톨릭 청년회관 ‘다리’ CY씨어터

◆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민, 연극 ‘878미터의 봄’

벽산희곡상 당선작인 ‘878미터의 봄’은 막장 인생들의 희망 없는 삶을 통해 또 다른 희망 그리고 위로를 발견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하나의 드라마 안에 서로 다른 시공간을 병렬하는 독특한 이야기의 구조를 보여주는 한현주 작가의 ‘구조적 글쓰기’는 ‘878미터의 봄’에서도 드러난다. 여신동 무대 디자이너의 손길이 합세해 갱도 VS 타워크레인, 과거 VS 현재, 현실 VS 환상의 구조는 극 전반에 걸쳐 여러 번 교차했다.

연극 '878미터의 봄'

제목에 사용된 ‘봄’이라는 단어도 희망을 바라는 봄(spring)일 수도 있지만 현재의 삶과 우리를,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보다’라는 의미의 봄(seeing)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숫자 ‘878’은 작품의 주된 배경인 탄광 막장의 깊이를 상징하기도 하고, 미완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도박판 같은 현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에 한번쯤 울분을 터트려 본 적이 있는 이라면 주저 없이 관람할 것. 누군가는 ‘지금’이 봄이라고 강요하지만, 자꾸만 멈칫거리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봄을 향한다. 둥글둥글한 이름을 가진 우영(박윤정)이 이름과 같은 삶을 살고 있길, 여경(신용숙)의 노란색 가디건처럼 그들에게도 어서 봄이 오길 바라게 된다. 4월 8일까지 남산예술센터.

◆ 변태를 강요당하는 당신을 위한 연극, 변태

변화의 물결 앞에 아직 준비되지 않은 변태를 강요당하고 있는 이라면 연극 ‘변태’의 출현이 반가울 것이다. 어렸을 때 꿈은 시인이었는데, 현재는 동네 정육점에서 고기를 썰고 있는 아저씨, 배우를 꿈꾸었으나 쳇바퀴 도는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 김과장이라면 더더욱 마음에 와 닿을 스토리다.

실패와 좌절에 대한 이야기가 더 공감을 얻는 시대다. 극단 인어의 창단 공연 ‘변태’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인생은 돌고 돈다’는 ‘인생유전’이다. 포르노 보는 고상한(?)시인, 고기 써는 실생활 시인들의 인생역정을 연극적으로 잘 풀어냈다. ‘언어를 위한 언어를 쓰는 평론가’에 대한 짧은 이야기도 흥미롭다.

연극 '변태'

최원석 작가는 “인간의 행동에 좋고 나쁜 것은 없다. 누에가 나비 되듯 변태하여 살아남은 인간과 변태에 실패하여 사라지는 인간만 존재한다.” 라며 “추상적인 선과 악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임”을 밝혔다. 18세 이상 관람가. 4월 15일까지 알과핵 소극장.

◆ 고급스런 유며 연극, 게이 결혼식

‘게이 결혼식’은 단순 코미디 연극으로 알고 별 기대 하지 않고 갔다가 제대로 웃고 나오는 연극이다. ‘성 정체성에 대한 유쾌한 한방’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버거운 현실 속에서 헛헛한 웃음이 아닌 꽉 찬 웃음을 원하는 관객들에게 적격이다.

작품은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거짓 결혼 생활을 하는 게이 커플의 이야기다. 진짜 부부 같은 이성애(?) 커플이 주고 받는 대사가 압권. 연인사이에 일어나는 소소한 싸움을 목격한 뒤 그대로 연극의 대사로 끼어놓은 느낌이 들 정도로 리얼한 대사가 관객들의 웃음보를 자극했다. 유러피언 특유의 웃음코드가 한국정서에 맞게 각색됐기 때문이다.

게이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명품 그림, 나나 무스쿠리의 '사랑의 기쁨'에 담긴 깨알같은 의미등이 매력적이다. 일상의 연기를 과감없이 보여주며 묘한 웃음을 자극하는 배우 최덕문과 슬픈(?) 폭로를 웃긴 폭로로 유연하게 소화한 수상한 아버지 서현철, 얄미운 잔머리를 굴리며 적재적소에 해결책을 제시한 우지순, 생계형 게이로 분해 코미디 연기의 진수를 보여 준 김늘메의 앙상블이 좋다. 7월 1일까지 학전블루 소극장.

공연 칼럼니스트 정다훈(ekgns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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