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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 개방 이후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받은 가장 강한 인상은 여자 뺨치게 잘 다듬어진 남자들의 눈썹이었다. 물론 아저씨나 노인 역할의 남자 배우들은 해당되지 않았다. 하지만 젊은 남자라면 후줄근하거나 멋지거나 하나같이 인공의 흔적이 역력한 눈썹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마냥 이질적일 것만 같던 그 눈썹들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도 눈썹을 다듬고 그리는 남자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장발과 바바리코트, 5:5 가르마

남자들의 화장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아름다움을 숭상했고, 남녀를 불문하고 자신을 꾸미는데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남자들이 외모에 관심을 갖는 것은 볼썽사나운 일로 여겨져 왔다. 그렇다고 하여 멋 부리고 싶은 마음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세계적으로 장발이 유행을 할 때에는 우리나라 남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머리를 길렀다. 또 체형과 상관없이 스키니 진의 원조처럼 보일만큼 꽉 끼는 바지를 입기도 하고, 키와 상관없이 바바리코트를 입었으며, 얼굴형과 상관없이 5:5 가르마를 타고 길게 기른 앞머리를 하트 모양으로 세웠다. 기타를 잘 치기 위해 특정 손가락의 손톱을 여자보다 길게 기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더 멋있어 보이고 싶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염이나 구레나룻을 공들여 기르는 경우는 있어도 여전히 화장이나 눈썹 손질은 남자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키 높이 구두와 BB 크림

굳이 공격적인 광고를 하지 않고도 성공적인 시장을 개척한 키 높이 구두와 깔창은 180cm를 넘지 않는 남자들의 필수품이다. 남자에게 있어 키 높이 구두와 깔창은 여자에게 있어 립글로스와 마스카라처럼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는 공공연한 무기인 셈이다.

남성용 BB크림의 등장은 키높이 구두 이후 가장 성공적인 멋내기용 아이템이다. 지금 남자들의 화장, 특히 피부 화장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효과가 탁월할 뿐 아니라 생각보다 사용이 쉽고 간편한 컬러로션과 BB크림의 등장은 여자들 이상으로 피부에 대해 고민과 스트레스를 안고 살던 남자들에게 단비 같은 선물이었다. 하지만 얼룩이 지지 않도록 공들여 BB크림을 얼굴 전체에 펴 바르고, 키 높이 구두와 깔창으로 위장을 하는 것에 익숙해 진 후에도 눈썹은 여전히 불모지였다. 10년 넘도록 긴 생머리와 한 듯 안한 듯한 투명 화장이 이상적인 여성 1위를 차지하는 내숭의 나라인 만큼 손을 대면 티가 확 나는 눈썹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영역인 것이다.
 
화랑, 눈썹을 그리다

새로 시작한 드라마 <선덕여왕>은 초반부터 화려한 볼거리를 곳곳에 포진해 놓았다. 새로운 황제의 즉위식에서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 의식을 춤으로 표현한 것을 비롯하여 신라의 꽃이라고 불리는 화랑들도 등장했다.

사실 화랑은 그 이름부터 꽃처럼 아름다운 남자를 뜻하지만 그 동안 여러 영화나 드라마에서 너무나 현실적인, 기대 이하의 비주얼을 선보이며 실망을 안겨 주었다. <선덕여왕> 속 화랑들은 화장을 한 얼굴로 등장한다.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를 연상케 하는 붉은 색 눈 화장이 도드라지는 바람에 그 미모를 꼼꼼히 살피기는 어려우나 수십 명의 화랑들이 나란히 앉아서 스스로 화장을 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커다란 볼거리가 되었다. 그들은 진지하고 신중한 얼굴로 거울을 보며 꼼꼼하게 분을 바르고, 볼과 입술에 붉은 연지를 문지르고, 섬세한 손놀림으로 붓을 들어 눈썹을 그렸다. 주목할 만 한 점은 똑같은 화장품을 사용하면서도 똑같은 화장을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주어진 재료를 내에서 각자의 취향과 개성에 맞춰 한 명 한 명 비슷한 듯 다른 자신만의 메이크업을 완성했다. 약 150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눈썹을 그리는 남자의 모습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 동안 사극에서는 여자들이 목욕을 하는 장면이 최대의 볼거리였다. 하지만 역사상 첫 여왕이 주인공인 드라마인 만큼 기존 사극과 다른 남자들의 모습은 확실히 여성 시청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기존 사극과 차별화를 둘 요량이라면 여자가 아닌 화랑들이 단체로 목욕재계를 하는 장면이 있어도 결코 과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시작이니 차후를 기대해본다.
 
아름다움을 향한 남자들의

신라시대처럼 남자의 화장이 자랑스러운 상징이 되지 않기 때문인지 오늘날의 남자들은 화랑들처럼 화장한 티가 확실하게 나는 눈썹을 그리는 것을 주저한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짙고 숱이 많으면서도 꼬리까지 가지런하게 난 눈썹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송승헌은 데뷔 후 한참 동안 '숯검댕이 눈썹'이란 별명으로 이미지를 굳혔다. 눈썹이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바람에 <여름향기>에 출연하면서 밝게 염색한 헤어스타일에 맞춰 갈색으로 염색한 눈썹이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을 정도였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실 짙고 예쁜 눈썹을 누구나 원하는 것이다.

눈썹을 다듬는 남자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일본 남자들처럼 원래의 눈썹모양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인위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정도를 벗어난 눈썹들을 다듬는 정도이다. 하지만 곧 자신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 눈썹을 스스로 그리는 날이 머지않아 올지도 모른다. 그때는 아마 갈라진 가슴근육처럼 예쁜 눈썹이 멋진 남자를 구분하는 기준 중의 하나로 당당히 자리 잡지 않을까.
  
꽃미남 애호 칼럼니스트 조민기 gorah9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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