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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요즘 애들은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어요”라며 K차장이 넋두리를 시작한다.

몇 일 전 회사에서 L대리와 나누었다는 대화를 들려준다.

“차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그래, 뭔데? 말해봐~”
“제가 이번 달까지만 회사에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갑자기 웬 뚱딴지 같은 소리야? 무슨 일 있어?”
“아니요, 그냥 좀 쉬고 싶어서요”
“뭐? 그냥 좀 쉰다고?”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한 달 한 달을 부도날 회사 어음 막는듯한 절박함으로 살고 있는 K차장으로써는 기막힌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주말에 로또라도 당첨 됐냐?”
“…그건 아니고요~”
“그럼 도대체 왜 그러는데?”
“…….”

“선배님! 요즘 애들은 진짜 웃겨요. 도대체 뭘 그렇게 힘들게 했다고 뻑하면 쉬겠다는 소리를 해요? 배가 부른 건지 아직 세상을 모르는 건지!”
허공을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내 뿜으며 K차장이 하는 말이다.

“쉬고 싶다”는 말의 의미는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직장생활 해보니, 제 인생의 그림이 그려지네요. 그 그림을 보니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모해 보이겠지만 잠시 자기계발의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이고, 이런 경우 학업을 계속 한다거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고 싶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어디에선가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옮기고자 하는데 공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서 내 페이퍼 워크의 대부분이 대리급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실무의 많은 부분을 대리들이 하고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입사해서 대리 직급에 오를 때 쯤이면 조직의 생리를 알게 되면서 회의를 느끼기도 하고, 본인의 가능성과 한계를 현실적으로 저울질하고 파악해 보는 시기라는 것이다. 또한 낀 세대로서의 고뇌도 느끼고, 나름대로 동종업계 사람들과도 교류를 시작하면서 지평을 넓히는 때이기도 하다. 아울러 본인의 몸값도 따져보면서….

“그래서 결국 뭐라고 대답을 해주었나?”

“계속 물었더니, 대학원 진학을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말려서 들을 것 같지도 않고 해서,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라고 하고 말았습니다.”

비행기 조종사 한 명을 육성하는데 훈련 비용이 60억 원 이상 들어간다고 한다. 대리 한 명이 탄생하는 데도 조직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 이런 ‘대리’가 조직을 이탈하는 것은 회사의 입장에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직의 경우는 경쟁업체로 이동해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도 회사로써는 신경 쓰이는 일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인재를 붙잡는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리라는 조직의 허리가 희망을 갖고 근무할 수 있는 회사, 새로 들어오는 후배 사원에게 대리의 자긍심을 내세울 수 있는 회사라야 한다. 마찬가지로 대리가 흔들리는 조직은 문제가 있는 회사라 할 수 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 ‘대리’들은 상대적으로 유능한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직장이 양에 안 찬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많은 기업이 멘토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멘토링 제도는 선배사원과 후배사원간에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맺는 데서 출발한다. 이 제도를 운영하는 목적이 여럿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원들의 조직 이탈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그만큼 많은 조직이 직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근무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고민도 어떻게 하면 우수한 사원을 회사에 계속 붙잡아 놓느냐 하는 것이다.

L대리가 K차장을 찾아와 말을 꺼냈을 때는 이미 상당히 심사숙고한 후일 것이고, 마음을 돌리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는 정도로 쉽게 단념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상당한 시간을 두고 여러 차례의 진지한 만남을 통해서 설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인재 확보를 위해서 초일류 기업의 CEO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 생각 잘 했어. 딴 길 알아봐, 우리회사 비전 없는 거 잘 알잖아~ 자네의 용기와 상황이 부럽네!” 이런 대화가 자연스러운 조직이 아니라면 말이다.

“예~ 선배님 말씀을 듣고 보니, 다시 한번 만나서 진지하게 얘기를 해 봐야겠네요”

“그래, 직장 생활이란 게 때론 아주 사소한 이유로, 때론 욱하는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하게 되기도 하니 다양한 각도에서 마음을 연 대화를 나눠 보라고~”

김학재 mindset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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