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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코르포와 바디 [박영순의 커피 언어]

입력 : 2022-06-11 17:00:00 수정 : 2022-06-10 21: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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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사진) 맛을 평가하고 묘사하는 용어들 중 가장 모호한 것을 고르라면, ‘body’를 제칠 게 없을 것 같다. ‘body’는 한글 표기부터 혼선을 일으킨다. ‘body shop’에서는 외래어 표기 규정에 따라 ‘보디’로 적지만, ‘nobody’는 미국식 발음으로 ‘노바디’라고 표기한다. 이런 탓에 커피나 와인 테이스팅 자리에서 ‘보디’와 ‘바디’가 제멋대로 섞여 나온다.

발음과 형식이야 그렇다고 치고, 뜻풀이마저 숱한 정의들로 인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body는 사전적으로 ‘한 개체가 독립적으로 이루는 완벽한 물리적 형태’를 의미한다. 그 자체는 향미와 전혀 관련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감각을 뜻하는 말을 붙여 ‘바디감’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콩글리시로 취급해서 사용하기를 주저할 필요는 없다. 합성은 언어의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다. 개인적으로는 ‘바디감’이 듣는 느낌이 좋고, 더 많은 의미를 담을 여지가 있어 보여 반갑다.

실제 향미 표현에 쓰이는 body는 이탈리아어로 몸을 뜻하는 ‘코르포’(corpo)에서 비롯됐다. 1730년대 이탈리아에서 레드와인의 향미를 표현하는 데 처음 등장했다. 와인을 입에 머금었을 때 혀는 물론, 점막 전체에 유발하는 무게감과 포만감을 균형 잡힌 건강한 신체로 은유한 것이다. 코르포는 관능신호뿐 아니라 알코올과 글리세린 함량이 많고 성분들의 농도가 진하다는 지표로 소통된다.

코르포에 실린 이런 정서는 1940년대 농밀한 크레마를 지닌 현대적 의미의 에스프레소가 탄생한 이후 커피 향미 표현으로 옮겨 갔다. 커피 추출에 9기압이 가해지자, 물에 잘 녹지 않는 기름과 섬유소 성분이 빠져나와 잔에 담기게 됐다. 전에 느끼지 못했던 커피의 점성 덕분에 에스프레소 관능평가에는 향미 외에 이들 성분이 부각하는 무게감과 질감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겼다. 그 느낌이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묵직한 레드와인에서 감지되는 코르포를 떠오르게 했던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에게 크레마는 단지 우유크림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크레모소(cremoso)는 용어가 따로 있다. 크레마는 우유에 달걀, 밀가루, 설탕을 혼합한 것으로 크림보다 진득하고 점성에서 비롯되는 탄력이 있다. 1960년대 에스프레소가 영어권으로 전해져 코르포가 body로 불리면서 이탈리아인 특유의 감성이 단순화한 측면이 있다. 미국 주도의 국제커피기구는 body를 촉각으로 감지되는 마우스필(mouthfeel) 용어로 분류했다.

body는 점차 추출 방법을 따지지 않고 에스프레소뿐 아니라 모든 커피에 대해 마우스필과 동의어쯤으로 활용되고 있다. 커피를 머금었을 때의 감각이 물에 가까운지, 우유에 가까운지를 판단해 각각 가볍다거나 묵직하다고 표현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여러 논문이 body를 물리적인 압박뿐 아니라 그로 인해 떠오르는 이미지와 향기의 풍성함과 연결시켜 커피가 지닌 전체적인 맛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정의한다. 커피에서 body는 ‘다중매개변수’로서 우리를 여러 생각으로 이끌어 주는 중요한 속성이다.

그러므로 body를 감상할 때는 향미를 유발하는 물질이 풍성해 행복한 이미지를 많이 떠오르게 함으로써 정서를 곱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즐길 일이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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