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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점을 왜 묘사하려 애쓰나 [박영순의 커피 언어]

입력 : 2022-03-19 18:00:00 수정 : 2022-03-19 00: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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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향미를 즐기는 것은 단지 미각과 후각을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감으로 포착하는 자극을 경험과 연관 지어 추억하는 기쁨이 있다. 여기에 그윽한 향기와 촉감이 이끄는 대로 아름다움을 추상하다 보면 고운 감성과 감정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커피에서는 좋은 것만을 깊이 사유할 일이다.

커피와 함께 하는 묵상의 시간을 방해하는 요인 중에 커피에 이미 들어가 있는 게 있다. 향미 평가에서 그것을 ‘결점(defect)’이라고 표기한다. 일각에서는 결점의 양상과 속성, 그 원인을 세밀하게 구별하는 것을 커피 전문가가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신념에서 일부러 썩은 콩을 섞어 맛보는 훈련을 반복하기도 한다.

언뜻 합리적인 것 같지만 썩은 커피 맛을 탐구하는 방식에 치중하는 것은 매우 잘못됐다. 커피에서 결점이란 한마디로 ‘커피에서는 나오지 말아야 할 속성들이 관능적으로 감지되는 상태’다. 커피 수확과 로스팅, 추출 과정을 거치는 단계마다 좋지 않은 향미가 한 잔에 담기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향미의 결점이란, 최선의 상태를 자주 접함으로써 자연적으로 드러나게 할 일이지 보물을 캐듯 정성을 들여 관능에 새겨둘 일은 아니다.

결점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속성으로 파악하려 애를 쓰다 보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흙, 가죽, 짚, 커피과육, 연기 등을 결점으로 단정하고 ‘이런 맛이 나면 좋지 않은 커피’라고 간주한다. 커피 전문가들이 향미 공부에 활용하는 아로마키트(사진) ‘르네뒤카페’를 잘못 분류한 데에서 비극이 시작됐다. 36개의 향을 4개의 그룹으로 나누면서 고급 커피의 면모가 되는 속성들을 ‘향 결점’이라는 항목에 넣어 버렸다.

르네뒤카페를 만든 프랑스의 장 르누아르는 결점향을 따로 만든 적이 없다. 그는 흙향을 결점이라고 평가하지 않았고, 오히려 좋은 에티오피아 커피에서 나오는 흙향에 취해보라고 권했다. 짚향도 커피에 미묘함을 선사하는 면모이고, 가죽향은 고급 커피의 지표이다. 특정 속성이 결점으로 추락하는 것은 균형을 잃기 때문이지, 본성이 아니다.

흙향이나 짚향이 어느 수준에서 결점이 되는 것인지 포착할 수 있을까? ‘귀씻이(洗耳)’라는 우리 풍습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선비들은 심한 욕설이나 부정한 말을 들으면 곧바로 물로 귀를 씻었다. 오염된 말이 마음과 정서를 흐트러트릴 것을 막기 위한 의식과 같은 것이다.

커피 향미를 공부하는 것도 이와 같다. 항상 좋은 글을 읽고 말을 들어서 정신을 맑게 유지하듯 관능도 언제나 깨끗한 상태로 가꿔야 한다. 바닥이 깨끗할수록 티끌이 쉽게 튀어 보인다. 결점은 단지 자극일 뿐이지, 감상해야 할 속성이 아니다.

커피를 마실 때는 반드시 출처에 대한 정보를 확인해 묵은 커피나 곰팡이 난 커피를 차단해야 한다. 출처가 정확한 커피는 로스팅과 추출 과정에서 바람직한 향미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품질이 좋지 않은 커피를 손기술로 좋은 커피로 만들 수 없다.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역발상이 필요하다. 관능이 고요하면 미세한 자극이라도 송곳처럼 선명하게 우리의 정서를 찌른다. 그것이 바로 커피에서 가려내야 할 결점이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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