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카르트에서 시작된 철학적 주제 중 정신과 물질의 관계에 대해 묻는 심신 문제가 있다. 데카르트 스스로는 그 둘이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원론자였다. 그러나 신경과학의 발달로 정신 활동은 뇌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알려진 현대에서는, 정신 상태는 뇌의 상태와 동일하다는 일원론(동일론)이 더 인기를 끄는 이론이다. 과거에 번개는 하늘이 내리는 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번개는 전기의 방전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번개가 전기의 방전과 동일한 것처럼, 정신 활동도 특정 뇌의 활동과 동일하다는 것이 일원론자의 주장이다.
아무리 신경과학이 발달한 현대라고 하더라도 정신이 한갓 물질과 같을 수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일원론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렇다면 일원론보다 더 과격한 제거론은 이해조차도 되지 않을 것이다. 제거론은 정신이란 물질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 아예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거론은 정신을 번개가 아니라 귀신에 비유한다. 한때 존재한다고 생각된 귀신이 현대에는 완전히 제거된 것처럼 정신은 완전히 제거될 대상이고, 이 세상에는 뇌를 비롯한 물질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철학은 눈에 보이는 않는 추상화된 대상을 다루기 때문에 여기에 익숙지 않은 대중에게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제거론도 그중 하나이다. 그런 와중에 이동건의 웹툰 ‘유미의 세포들’은 굉장히 도움이 된다. 이 만화는 주인공 유미에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의 변화나 체내 활동을 의인화된 뇌세포들의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이게 바로 제거론적 사고방식이다. 최근에 같은 작가가 연재를 시작한 ‘조조코믹스’를 보니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나가 오늘의 나를 둘러싸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주된 플롯이다. 이것은 철학에서 개인 동일성 문제의 기본적인 아이디어이다. 대중문화가 철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선도하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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